일본에서의 살아남기 3일 [11] – 귀국하던 날 (2) –

최재원


=== 귀국하던 날 (2) ===

  지루한 시간이전에 NW항공권을 받는데 시간이 한 참이나 남아 있어서 직
원에게 "마이 플라잇 범버 85, 18:35, 캔 아 체크 인 나우?"했더니 지금 
체크인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이렇게 살피는데 노 루기지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그 앞에 가서 서니깐 일본말로 무어라무어라 한다. 그래서 
"인 잉글리쉬, 익스플레인" 했더니 짐이 없냐구 한다. 그래서 전부 손으로
들고갈것이라고 하니깐 표를 내어 준다. 그러는 중간에 보았더니 NW멤버쉽
카드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른 "하우 캔 아이 메이크 더 멤버쉽카
드?"하면서 그 팜플렛을 가리키니깐 임시 카드를 만들어 주며 비행기탈때
보여주라는 것이다.

  체크인을 한 후 조금 전에 보아두었던 공항이용권 자동판매기에 가서 돈
을 넣구 공항이용권을 사구서는 내려가니 출국로비가 있었다. 여기서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데 휴... 처음엔 미쳐 정리가 덜 끝났던 사항들을 메
모를 하며 보냈는데 그도 싫증이 나구 그런 시간치군 잘 지나갔지만, 어느
덧 어둑어둑해 졌다.

  시간이 되어서 나가려는데 몸수색기에서 삐익 소리가 울린다. 공항직원
이 자기앞으로 와서 몸에 있는 쇠부치를 내어 놓으라는 시늉을 한다. 이것
저것을 내어 놓고 다시 통과하니 무사통과. 워싱톤카드를 넣는 케이스가 
문제였습니다. 1등석, 2등석이 타구 이코노미클래스가 탈때가 되어서 나가
면서 보여주라구 했던 것을 보여주어도 감감, 별반응이 없고 돌려주었다.
잘못 알아들었었나? 

  비행기를 탔는데 어째 한국행 비행기치고는 한국인 승무원이 없는 편. 
한국인 승무원이 탓다는 것은 서비스의 하나로 자랑을 하는 눈치라, 게다
다 내가 앉았던 좌석쪽으로 일본계 미국인으로 보이는 승무원의 서비스영
역. 왜 그리 추운지... 칼은 더웠었는데, 담요같은게 있어 그를 덮었더니
승무원이 와서 뭐래는데... 버튼을 눌러주구, 에어콘을 조작하는 것 같기
도 하구... 다음엔 입국신고서, 세관신고서를 나누어 주어서 기장을 하고.

  에구.. 지나가구 나서야 머릿속에 또렷이 "쿠드 유 섬딩 투 드링크?"였
는데 이런? 버스는 이미 지난뒤였다. 결국 식사가 나온 후에는 응당 나와
야 할 커피가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좀 크게 말했으면 좋았을 걸 했지
만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였던지... 원(핑게없는 무
덤이 없다더니...). 

  서울에 도착해서야 겨우 휴...우... 하고 긴 한숨을 쉴수가 있었습니다.
세관신고처에서 대학생이고 캠코더하나뿐인데 출국때 받은 증명서를 내구
나와서 여권에 병무귀국신고를 해야 해서 2층에 올라갔더니 이미 퇴근하고
없었습니다. 결국 이틀후에야 대방동에 있는 서울지방병무청 민원실로 가
서 입국신고를 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고서야 겨우 요번 여정을 마칠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여정 기행기를 다쓴 지금 순간에야 여정을 마칠수가 있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만은... 겨우 체력을 회복하고 면도날 상처에 입안이 헐었던 것
도 아물었고 눈에 났던 데레끼도 사그라들었구 했습니다. 휴우...

  정말 평생에 한번 언제 이런 진경험을 할수가 있었겠습니까! 자신감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일 주는 또 몰랐었습니다. 이제는 세계 어느곳
에 떨어뜨려 놓아도 집을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요.
아무리생각해도 원로방의 수많은 할아버님, 할머님, 누님, 어머님, 등등의
지대한 관심 덕분에 무사히 귀국할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상으로 요번 멜로우 기행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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