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보통신의 큰도움이 미륜사의 묘소를 방문하고

최재원


  안녕하셔요!
  지난번 일본에 가기 전에 저는 양화진이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10월 10일날, 화요일이었는데... 처음엔 양화진이라고 해서 강화도 어디나
그 어느쯤인가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안산원로방강의를 위해
작성한 교재를 정보문화센터에 가져다 주기 위해 교통정보를 찾아다니며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 내려서 ... 하다가 양화대교의 양화가 양화진의 그
그것과 같고, 또 돌아오는 길에 외인묘지라는 표지판을 보고 아하! 여기가
바로 그... 했었습니다.

  양화진 외인묘지,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 내려서 10분내외 걸으면 찾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선교사들께서 묻힌 곳. 교회도 있었습니다. 예상하
기로는 아주 큰 묘지인것으로 알았는데 아주 자그마한 공원규모로 산책로
로 하면 10분정도 걸릴 규모였습니다.

  뮬렌스테트라는 단어만 기억해 두고 있었고 탄흔이 있고 자그마한 묘비
라는 키워드만을 가지고 찾아들어가는데 일단 끝에서 안으로 찾아들어오기
위해 걸어가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낙엽들을 태우
고 있었고 오후시간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규모가 예상보다 작은것에 놀랐고, 일단 쭈욱 묘비명을 湳어 가는데, 모
두 선교사들이었는데, 큰대자모양으로 무덤의 경계석이 비탈길에 새겨져 
있는 곳에 있는 묘비를 보는데 헨리 옌센 뮐렌스테트라는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다음과 같이 쓰인...
    [  IN MEMORY OF 
       HENRY jESSEN
       M " HLENSTETH
         U    
       BORN 17 MAY 1855
       DIED 17 FEBRUARY 1915 ] 이라고 검은색으로 쓰여진...
       
  언뜻 보아도 20여개에 가까운 탄흔이 있었고 세로 1미터얼마, 가로 70여
센미터정도 되는 묘비였으며 양화대교가 바라보이고 소나무에 의해 햇볕을
바로 쬐이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낙엽이 쌓이고, 잡초도 나와 있는 모습에 걷어드리고 사진으로 묘비와
그 위치를 기록하고 나오는데 의료인인 알렌과 언론인인 베셀의 기념비, 
묘비와는 대조가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선교사로서 이름있는 학교를 설립하였던 셔우드씨의 기념비, 묘비
도 그러하였지만 이들의 묘비와 기념비엔 의례 의료인단체나 언론인단체에
서 그를 기린 내용의 비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어느것이나 정부에서 세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규모또한 미륜사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묘소의 위치도 또한 알렌, 베셀 두분의 묘소는 제일 앞에 위치해 있고
제일 중앙에는 셔우드의 묘소가 위치해 있고 미륜사의 그것은 한강을 바라
보고, 양화대교를 바라보고 있어 탄흔히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점 등
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보통신관련단체의 이름이 부끄러울따름입니다. 알렌이나
베셀과 비교해 보면 미륜사께서 무엇을 그리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근대사에 있어 외국인들의 공헌은 무엇보다도 조선의 독립에 대한 객관
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가 볼때 민족사
관에 입각한 주장이라던가, 자국민의 주장만으론 그 객관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익이 없지만, 조선의 독립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외
국인들의 주장은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게 되고 설득력을 가지게 됩니다.

  일례로 인도의 간디에 의한 항쟁이 3.1운동의 영향이라던가 하는 주장을
한국민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물안 주장에 불과하게 여겨질 것입니
다. 그러나 인도의 시성 타고르 혹은 간디연구소에 의해 얘기되게 되면 그
것은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객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로 전신이권이 일본에 의해 침탈될때 을사조약이니 하는 것
이전에 이권침탈이 되고 있을때 조선의 관련종사자들 전원의 반대에 비한
미륜사의 끝까지의 항거는 이런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할것입니다. 그가
그를 저지할 수 있는 위치나 직위가 아니었다거나 관련종사자들 전원의 반
대도 있었다거나 하는 사실은 4.19에 불을 지른 한 자그마한 학생의 죽음
에 비견해 볼때 재고해 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국사책에 전신관련인의 이름을 변변히 올리지 못한 것은 분명 정보통신
관련인들의 잘못입니다. 알렌이나 베셀같은분이 정부가 나서서 추서한 분
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의료계나 언론계 등 관계 민간단체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서한 것인데 과연 이제까지의 정보통신계에서 이러한 작업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사실의 발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의 여론화로 국사책에다
역사책에다 게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려사같은 것과 개인문집이나 도자
기사같은 것은 비교가 되지 못합니다. 종합역사서에 게재될 수 있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미륜사와 Snail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봅니다. SDN을 통해 미륜사의 후손
을 찾던 중 전화번호부책을 통해 손녀뻘 되는 이를 찾아내어 그를 알려준
외국인에다 직접 미륜사가 근무했던 회사에 가 이력서를 찾아내 그를 한국
으로 Snail(흔히 E-mail과 비견해 일반 우편을 느림보 달팽이에 비유)로
보내어주어 국내엔 없었던 그의 사진과 한국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해
준 외국인의 얘기. 인터넷에서나 있을 법한 새로운 가상공동체의 더없이 
따뜻한 미담이 아닐 수 없을것이다.

  그렇게 미륜사의 이력서가 Snail로 도착되었는데, 나는 미륜사의 얘기가
녹음되어 있는, KBS라디오로 방송되었던 내용이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를 
이 Snail로 받을 수가 있었다. 주소가 잘못 기재되 전에 살던 집으로 갔었
던 테잎을 우연히 시장에서 주인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어 후에 전해 받았던
것입니다. 우연치고는 아주 이상한 우연인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사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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