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단 이유가 더 중요한 것이겠지요.

안녕하세요!
요즘엔 뉴욕주 변호사 시험공부를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무슨 고시 공부하는 분위기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명문 로스쿨도
첫번째 시험 합격률이 80-90%에 불과하고 50%미만인 학교들이 많을
만큼 쉽지는 않지만, 두달에서 6개월정도 일정한 공부 시간과 합리적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불가능한 시험은 아니에요.

강좌를 들으면서 이런 얘길 많이 들어요. 이를테면 주관식 시험에서
(한국과는 달리 과목수가 스무개가 넘는데, 그중 어느 과목에서 어떤
부분이 나올지를 모릅니다) 자기가 전혀 공부하지 않은 주제가 나왔
을땐 어떻게 해야 하나 요령을 가르쳐 주더군요.

한 교수는 바빠서 공부를 안한 부분에서 시험이 나와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다섯가지의 이유를 썼는데, 그날 집에 와서 그 분야를 전문
으로 하는 변호사인 아버지께 답안을 말씀 드렸답니다. 그후 침묵이
흐르면서, 불합격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에서
사법시험을 봤으면 100% 불합격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결과 발표를 보니 합격이었다고 합니다. 즉, 10점
만점인 주관식 시험에서는 0점이 없으며, 합리적인 상식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 옳을 것이란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 논리성에
3-4점이라도 준다는 것입니다. 정답이 틀렸으니 0점인 것이 아니구요.

결과적으로 정답이 중요하다기 보단, 그 정답을 이끌어낸 이유를 어떻게
잘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우리 사회의 생각은 진실이 중요하고, 정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답은 누군가가 정해줍니다. 논쟁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사람이 정해주지요. 회사라면 상사가, 집안에선 부모가 정해줍니다.
아무도 이유를 잘 설명해 주진 않습니다. 물론 자신이 선배, 상사의
입장이라면, 이유를 잘 설명해 주어도 무조건 싫다라고 하는 후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죠.

논리적으로 글쓰기, 말하기 어떻게 생각하면 익히기 쉬운 것이라 생각
합니다. 물론, 정답보단 이유를 더 중요시 한다면 말이죠. 신문을 읽을
때도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무엇이 결론인가? 이유는 필요없고, 그래
내편인가 적인가?”라고 하기 보단 도대체 “왜?” 그렇게 된것인가 라고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무엇이 정답인가에 대한 답은 ‘정답은 A이며, 그 이유는 B, C이기 때문
이다’라는 것이 보다 논리적인 글쓰기, 말하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가정에서 아이의 질문에 ‘백과사전을 보면된다’라거나 ‘크면 알거야’
라거나 ‘질문 좀 그만하라’라고 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논리적인 글쓰기,
말하기 연습은 좀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미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질의응답식으로 얘길 한다고 합니다.
전보대 하나를 설명해도 아이가 다른 사람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정보를 주고, 부모에게서 얻은 정보를 할머니에게 설명
하는 아이와 ‘백과사전만 찾는’ 아이의 차이점이 바로 한국과 서양사회의
토론문화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좀더 나아가서 “B와 C가 옳다면 A가 옳은 거야”라는 식으로 토론할 수
있다면 전공관련 원서를 ‘A의 요건은 B와 C구나’하면서 요약정리하며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관과 객관이 혼란이 될 때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한국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미국에 와서 처음 겪는 문제는 바로, 한국식으로
결론을 먼저 내려버리고, 미국식으로 글을 쓰면서 자신이 주관적으로
결정해 놓은 것에 반대되면 무시해 버리면서 그래도 자신이 옳을 것이란
생각에 글을 써버리는 것입니다. 미국 교수들이 너무 주관적이란 비평을
써 준다면 100% 이 문제입니다. 제 경험이기도 하구요.

미국에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제한된 조건하에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 대부분 이 제한된 조건을 벗어나 생각해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을 써 나가면서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
쓰면서 결론이 잘못된 것이면 생각을 고쳐야 하는데, 영어 자체와 글쓰기가
서투르다 보니 자신이 증명을 못 찾았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자신의 주관이
옳을거란 고집하에 글을 써 버려서 객관적이지 못한 글이 되어버렸기 때문
입니다. 특히 전공에 대한 한글 지식이 더 많을때의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에세이는 정답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하에서 가정
적인 정답, 그러니까 최종의 정답이 아니라, 과정중에 있는 가상의 정답
을 찾아내는데 있어서 객관성을 가지고 있느냐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객관적 증거없이 주관적인 결론을 내어버리고 거기에
맞추서 생각을 맞추려는 우리의 흔한 실수가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물론 우리 처럼 원칙, 진실을 중요시 해서 결론을 먼저 내리고, 객관적인
근거를 추려내든, 서양처럼 과정, 절차의 정의를 중요시 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정리해서 결론을 내리든 모두 비슷한 내용을 가지게 됩니다.
문제는 검증이 될 수 없는 경우인데, 우리처럼 글을 쓰더라도 글을 쓰면서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없는데, 이미 직장
상사나 선배, 부모가 결론을 내린 경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자신을 틀렸다고 생각해도 이미 수정할 수 없는 결론으로 출발 했으니까요.

이렇게 되면 글을 아무리 B와 C가 있기 때문에 정답은 A입니다라고 해도
논리적인 글쓰기나 말하기는 아닙니다. 정답일수도 있고, 진실일수도 있지만
언젠가 중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인간의 사랑이나 가족간의 사랑이라면 객관성보단 정서를 더 중요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성이 중요한 글쓰기나 토론을 할 때에는 진실보단
객관성, 그리고 왜 옳은가의 이유가 더 중요해 집니다.

서양사회에서 CSI과학수사대 시리즈 처럼, 증거가 더욱 중요한(물론 때론
증거를 속여서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반면 우리 사회는 객관적인 증거보단, 주관적인 진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증거가 없으면 범죄인의 자백만으로 유죄가 되는 확율이
월등이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서양의 동양의 문화차이라고 하고 그냥
그대로 두기에는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서양식이 옳으냐 동양식의 사랑과 배려가 옳으냐의 질문이
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둘중에 어느 것 하나, 이유없이 뭐가 옳으냐는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되며, 각 분야마다 가정이나
연인사이라면 100% 정과 사랑이 우선이 될 것이고, 시사토론이라면 100%
인정이나 사랑보단, 객관성이 우선이 될 것입니다.

A인 경우엔 서양식이, B인 경우엔 동양식이 좋다는 생각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도 다른 두 문화사이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늘 이렇게
비판을 합니다. 서양식이 적용되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동양식 정서가
있는데 그렇게 냉정하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하거나 그 반대일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확연히 어느 방식이 좋다고 하는 분야는 적을 것이고, 말그대로
융합되어서 적절히 활용되어야 할 분야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복잡한 것입
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면 객관성이 있는 혹은 논리적인 글쓰기 말하기를
익히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은 항상 한가지입니다.
물론 논리이야기에서 살펴본 것 처럼 이념이 다르거나 용어가 다르면 결론은
두가지 다 옳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다수결로 결정이 되면 되겠
지요.

그렇지만 각자의 사고방식, 세대간의 생각차이 등등으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하느냐 하고 보면, 결국 각자가 정해 놓은 정답이 여러개
있다는 것이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의견이 여러개가 있다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각자 이것이 옳다라고 주장하지만 그에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문게 사실입니다.

결국 사회가 투명화되고 합리화 되려면 각자가 내린 결론을 고집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되어야 하고, 자존심으로 상대방에
대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결론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었다고 무조건 공격만 해서는
안되며, 생각을 바꾸면 무슨 큰죄라도 지은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것은 세분되게(나쁜 의미론 복잡하게),
이성적으로(나쁜 의미론 냉정하게), 합당한 이유에 맞는 결론을 내린다는
것에서 출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글쓰기나 말하기에서 정답보단,
과정인 이유가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여담이지만, A가 좋아 B가 좋아라는 질문에 신세대는 둘다 싫어라고 한다는
10년전 얘기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A가 좋아, 그냥! 감성에 승부하는 건
남을 유혹하는 광고나 선전에는 좋습니다. 그렇지만 자녀교육을 이렇게 한다면
안되겠지요? 그냥 끌려서 A가 정답이야 라고 말해서는 안되겠지요. 우선 자신의
자녀, 동생, 후배, 친구에게 부터 이렇고, 저렇고 해서 그런거야 라고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이미 반은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논설문은 주관적이고, 설명문은 객관적이라구요? 토의는 결론이 있는데,
토론은 원래 결론이 없는 것이라구요? 대답은 한마디로 일본식 주입식 교육에
속으셨습니다!입니다. 문학이 아닌 이상 객관적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이란 이념을 달리하지 않는
한 없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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