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한일 법문화와 고비용 고생산성 미국 법문화

보스턴어학연수3
안녕하세요!
우리나라가 이상하게 자꾸만 일본을 배우려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하는 나라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이 그렇구요. 일본이 변호사 숫자를 늘려야만 한국이 따라서 늘리고, 일본이
2004년에 로스쿨을 도입하니까 우리도 받아들이구요.

이건 교육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어교육에서도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일본이 받아들인
미국식 열린교육인데, 게임이나 노래만 부르고 정작 영어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제2외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여러가지 활동중에 게임과 노래 등이 있는데 그것만
받아 들인 일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나 놀이만 하고 있으면 영어를 습득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노출이 안 이루어 집니다. 미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러한 문제가 안 생겼을텐데 말입니다.
애들이 I am apple.하면 선생님이 고쳐주어야 하는데, 무조건 영어만 하면 된다고, I am apple, too.
We are apple. 하면서 그냥 아이들과 놀아버린다면 제대로 된 영어에 노출될 기회를 그만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일본의 로스쿨에 가면 기본 과정은 옛날에 가르치는 대로 똑같이 하고, 3학년과정에 무슨 무슨 실무
라는 과목을 별도로 만들어서 실무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일본 커리큘럼을 따라가려는
것이 사실입니다. 로펌실무I, II 이렇게 만들 것이 아니라 모든 수업을 판례위주로 실무교육을 해야
하는데 참 걱정입니다. 심지어 판례교육 조차 일본식 요약판례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종
로스쿨 무슨무슨 법이란 이름의 교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기존의 이론서에 있는 판례 요약본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수입된 학설들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이론서 교육 중심의
문화를 바꾸기는 참으로 힘들것 같습니다. 각 대학의 반수 이상의 교수님들이 독일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시니까요.

당장 외국의 로스쿨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참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수들에게 연구
용역을 줘선 안되는 것입니다. 외국의 로스쿨에서 로스쿨 교육학을 전공하는 교수에게 용역을
줘서 그 연구결과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연구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 로스쿨 교육
에 관한 저널(논문집)만 서너개가 넘습니다. 로스쿨 경험 몇년 한 학생이나 교수들의 경험적 한계
가 분명한데 한국 연구자를 참여시켜 외국 로스쿨을 연구하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예로 배심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청와대의 사법개혁위원회에 제보를 했더니 나오는 답변이
위원회에 미국의 유명한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어서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법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의재판을 영상으로 살펴보면 잘못 전해지는 것이 많습
니다. 솔직히 미국 영화속에 나오는 배심원 장면은 법원 현장과는 다른게 사실입니다. 영화적 효과
를 사실과 착각하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미국 로스쿨 출신 변호사 몇명이 미국 배심제에 대해서 더 잘 알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에서 배심제
도를 수십년간 연구한 교수들이 편집하는 저널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겠습니까? 간단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배심제를, 미국도 폐지를 고려하고 있는 제도이고, 폐해가 더 많은 제도
라는 등등 스테레오 타입의 부정적인 정치적 구호로 사용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미국으로 6개월
내지 1년반 정도 연수를 오시는 검사, 판사님들이 많으시지만 연수기간이 짧아서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차들 하십니다. 결국 한국에서 알고 있던 선입견들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정도로 그칠때가 많습
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로는 배심재판에 의한 결과나 배심원 없이 판사만에 의해서 이루어진
재판이나 모두 95%정도의 정확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모두 5%정도의 오류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배심원들이 사건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거나, OJ심슨 사건처럼 유죄가 무죄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고, 일반화의 오류를 극복하기 힘든 사례입니다. 배심제가 무조건 옳다라고 주장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객관적인 연구를 해서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 중에서 몇몇 권위가나 전문가들, 혹은 미국의 제도를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저 같은 학생
들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전문가들에게 연구용역을 맡겨서 각국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비교하고 각국의 장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고, 일본이 아시아 문화권에 맞게 잘 수정해 놓았으니 일본 것을 가져다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연구태도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영어를 못하는 일본의 영어수업을 받아들이는 한국의 교육당국도 참 이해할 수
없지만, 로스쿨 교육과정 마저 이렇게 되어 버린다면 참으로 걱정입니다. 일본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1등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삼성그룹이 문제가 있는 것은 자기가 1등인 분야를 아직도 일본을 배워 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개발해 가야 하는데 회장이 일본 취향이라고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긴 재벌계열 기업들은 재벌 사위한테도 복종한다고 남자 지배인이 무릎으로 박박 기어가서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하고 한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일본을 극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민주주의 시작한지가 50년이 넘은 일본이 정권한번 바꿔본 적이 없고, 미디어의 선정성은 프랑
스의 자유연애주의를 넘어 동물적인 수준으로 가 있는 일본에서 뭘 배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
습니다. 한국 케이블 방송들이 따라하는 선정적인 내용들, 자막의 선정성 모두 일본 오락프로
그램에서 배워오는 것이 아닙니까? 배울 것을 배워와야지 그토록 천박한 것을 무슨 선진문화
라고 배워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빨리빨리”문화를 가지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뛰어 다니지도 않았다는데 말입니다. 농민들도 농요를 부르면서 여유롭게 일을 했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문화가 생겼을까요?

간단합니다. 세계 각국의 “빠르기”와 관련된 문화를 조사해 보면 됩니다. 세계 1위는 어디일까요?
당연합니다. “일본”입니다. 시간관념도 제일 빠르고, 제일 빨리 걷고, 제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춥
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시간을 맞춰야 하는 힘없는 근로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까?

미국은 중간정도 순위입니다. 반면에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등은 후순위에 속합니다. 브라질에선
한두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합니다. 약속시간을 잡아놓아도 30분이고 한시간이고 늦게
와서는 용건은 얘기안하고 커피만 마시다가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시간대에 너무나 많은 약속을 잡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간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어디에서 들어온 것일까요? 일본이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왜 빨리 일을 해야 하고, 정확한 시간을 맞춰야 할까요? 군대문화죠. 전쟁을 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고, 행진할 때 줄을 잘 맞춰서 빨리 움직여야 겠지요. 시간을 맞추어야 작전을 할
수가 있겠지요. 군국주의 일본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35년간의 일본 식민지
지배가 낳은 빨리빨리 문화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근로자만 고생하는 것이지요.

열차가 늦게 도착한다고 철도청 기사분들을 비난하고, 일본의 모범을 좀 배워라고 하면서
그러니까 한국이 일본을 못 이긴다고 하는 참 황당한 어른들이 많지 않습니까? 좀 참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효율성, 속도, 등등 일본적이고, 남성적이고 군사문화적인 가치는 이제
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각 문화권에서 인내심에 관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전철이 지하공간을 이동할 때 갑자기
불이 꺼지고, 여름철인데 에이컨도 동작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승객들이 불평하기
시작하는 시간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참지못하고 제일 먼저 불평하는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일본입니다. 1분28초정도. 제일 오래 참는 나라는 뉴욕시의 전철이용객이었다고 합니다.
4분이 지나도 불평을 안했다고 하네요.

미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간단한 점심이 40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레스토랑 직원이
와서 물어보거나, 접시나 컵을 가져가거나, 혹은 영수증을 갖다 줄때 까지, 심지어 신용카드
를 다시 가져다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격 급하게 불러서 말하면 참 이상
하게 봅니다. 사실 속이 터집니다.

살던 아파트에 화재방지 알람이 고장이 나서 오작동을 자주 합니다. 소리가 정말 크기 때문에
끄지 않으면 제대로 잘 수도 없습니다. 각 층 아파트의 벽에 붙어서 내는 소리가 정말 큽니다.
그런데 소방차가 와서 오작동임을 발견해도 정작 아파트 관리자가 와서 알람을 끄기 전까진
계속 소리가 들립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울려도 아무도 항의전화 한통 안합니다.

공동 아파트 현관의 열쇠가 있는데 관리자가 잘못 바꿔서 며칠동안 문을 열고 다닐 수가 없었
습니다. 후문이 있어서 그리고 다녀야 하지만 아무도 항의전화 한통 안합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나서야 아시아인인 우편배달부가 불편하다고 연락을 해서야 고쳐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불평을 참 안합니다. 인내심이 많은 것인지 참 느긋합니다. 카트리나 피해가
온게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복구가 안됩니다. 공립학교는 아직 3분의 1도 복구 안됐습니다.
한국 같으면 6개월 지나 복구 안되면 난리가 날텐데 말입니다. 앰블런스 운전자가 환자를
옮기는데, 쵸코렛바 먹어가면서 합니다. 그걸 이상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평등개념이 철저하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불평을 하면 매우 무례한 게 됩니다.
그냥 참아야 합니다. 중상층은 자신들이 대우를 잘 받으니까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편입니다.
소수인종들은 자신들이 차별받으니까 그대로 평등하게 상대방에게도 불친절하게 굽니다.
자기들이 대우 받는 그대로 돌려줍니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은 전혀 안통합니다. 법원의
직원은 외국 판사에게도 유어 아너라고 존칭을 쓰는데, 유치장 관리자는 대놓고 무시를 합니다.
이런게 미국식 평등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의 개념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미국 대학이나 기업에서 만일 일정비율 이상의 여성이나 소수인종이 교수, 학생 그리고 직원
으로 채용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차별이 되어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일 집행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미국의 평등개념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조금만 뭣하면 기회의 균등만 보장하면 되지 결과의 평등은 안된다고 합니다.
특정 단과대학은 아예 여자교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눈으로 보면 여성차별이고, 매우 야만적인
학교가 됩니다. 국제평가상 우수 대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양성이 없으니까요.

이처럼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개념이, 다른 문화권에선 참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사람사는데 다 똑같지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자기의 방식으로 보니까 차이점을 잘 발견할 수가
없지만 각종 실험을 통해서 속속 이런 문화권의 차이가 연구되어지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부지런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가정을 파괴하고 가정의 대화가 단절되고, 자녀에게서
아버지나 맞벌이 부부인 아내는 사라지고, 이혼율은 높아지고, 청소년 비행율은 점점 높아지고,
그리고 인간관계로 자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로 인내심을 갖고 참아줘야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있는데, 경제 성장이 급하다고 가정이나 소외계층은 나 몰라라 합니다.

성장하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거나 아직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졸라맬 허리 여유가 있는 사람들부터 좀 공부 열심히 더하고, 일좀 열심히 더했으면
좋겠습니다. 일 현장에서 일 하느라 밤잠 못자는 사람들이 졸라맬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가정
다 파괴되고 나서 성장의 결과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루 근무시간 8시간에 맞춰서 프로젝트 기간을 잡고, 거기에 못맞출 불가피한 경우에만 야근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쟁이 치열하다고 아예 야근시간을 예상해서 프로젝트 기간
을 잡아 수주를 하고, 더 늦어지면 아예 집에도 못들어가게 하면서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가 만들
어지길 바라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근로자가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런 정말 같은 거짓말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생산성이 1등인 국가는 바로 미국입니다. 근로시간도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적은데 생산
성은 더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생산성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아야 해답이 나옵니다. 근로자의 생산성이란 국내총생산 즉,
GDP를 근로자 숫자로 나눈 것을 말합니다. 소위 근로자 1인당 매출액 기준이란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근로자가 게으르다거나 근로자의 탓만할 수가 없다는 것입
니다.

공무원들이 공장만들 때 규제를 많이해서 창업이나 새로운 사업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GDP를 낮추게 됩니다.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아닌 매출액만 높은 외형늘리기 시의 성장
이 진행되면 당연히 근로자 1인당 매출액은 떨어집니다. 또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팀장, 전무,
등등 복잡한 결재과정을 거치고, 각 결재과정마다 깨끗한 보고서 올리느라 글자폰트, 차트 색깔
수정하는데 시간 다 보내면 당연히 매출액이 떨어집니다. 엉뚱한 데 시간을 쓰기 때문이지요.
필요없는 회의하면서 부장이 일장연설만 하고 있으면 당연히 매출액 떨어집니다.

한국 사회의 부패와 각종 권위주의적이 결재과정, 공무원들의 규제중심주의 일처리 등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지 결코 근로자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근로자처럼 일 열심히 하는 나라
가 없고, 우리나라 처럼 야근에 주말까지 일하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근로자가 아닌
사회의 잘못 때문에 낮아진 생산성 만큼만 임금이 올라가면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할 수가 있습
니까?

기계화를 해서 생산속도를 높이면 매출액이 늘 것이고, IT산업, 소프트웨어 산업등 순이익이 높은
서비스 산업이 늘면 매출액이 늘 것이고, 부패를 줄이고, 결재단계를 줄이고, 창업이나 공장 설립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규제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그리고 하다못해 결재서류도 재작성하지
말고, 원문에 각 단계마다 줄 긋고 메모 달아서 쓸데없이 워드작업 하는데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하면 매출액이 늘 것입니다. 그러면 생산성이 향상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당국이나 관련 학자들은 근로자들이 힘이 없으니까 거짓말을 합니다. 생산성이 무엇
으로 측정되는지도 국민은 모릅니다. 무엇이 생산성을 낮추느지는 설명안하고, 무조건 생산성을
넘어서는 임금 인상은 안된다고 힘없는 근로자만 옥죄입니다. 전부 일본식 재벌문화를 받아들인
탓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성장해도 양극화만 강화될 뿐입니다.

빨리빨리가 그렇게 좋다면 결재나 빨리해주고, 공장이나 빨리 만들어주고, 열심히 가정까지 다
버리고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은 좀 쉬게 해줘야 하지 않나요. 주말에 좀 쉬고, 밤에 잠을 충분히
자야 평일 낮에도 잘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근로자 몫의 생산성도 높아지는 것이구요.
충전을 해 줘야 배터리도 동작이 되는데 인간은 배터리만도 못하게 밀어붙여서야 되겠습니까?

오래전에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도대체 그 영화가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웃었던 저를 포함해서,은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나요? 국민들이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런데 국민을 불행하게 하면서 성장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성장한 후에 행복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러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언제 한번 행복해 봅니까? 목적과 수단이 괴리가 되면
안되겠습니다.

사회 전반에 남아있는 일본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말끔히 없애야 하겠습니다. 배울 것을 배워야지
글로벌 기준으로 나쁜 것을 배워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본에서 ‘국가의 품격’이란 글이 유행
한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엘리트입네 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읽어서 인용을 합니다. 도대체 일본이
어떤 면에서 품격있는 국가라는 것인지,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참 이상합니다. 객관적으로 잘못
된 것을 일본이 하니까 따라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어를 배워서 공산주의를 배운 386세대가 지나고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되면 바뀔수 있을까요?

일본이 배려를 잘 한다고 하는데 사무라이들한테 죽임을 당할까봐 복종을 하는 것이 어떻게 배려가
됩니까? 일본 사람들은 악수도 안한다고 합니다. 악수를 하려면 질겁을 한다고 합니다. 몸이 부딛
히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해몽이 좋아 일본이 좋아보일 지 몰라도 진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원인을 알고 보면 그렇게 좋은 가치가 아닌가 분명해 질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나이보단 입사년도, 각종 조직의 서열이 더 우선입니다. 일단 회사나 어떤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상하서열이 바로 잡히게 됩니다. 경력이나 직급이 위라면
무조건 복종입니다. 그래서 아랫 사람이 무슨 비판이라도 하면 금방 거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급이 안되는 사람이 비판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거만해서 거만하다고 느끼는게
아닙니다. 그러니 일본 사회에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받아들여질 리가 없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논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서양문화가 권위주의의
극치인 일본에선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면서 정권한번 제대로
교체해 본 적이 없는 일본에선 당연히 이런 비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품격’이란 책에선 미국의 논리를 천박한 것이라고 정치적인 구호로 평가절하 하고 있습
니다. 각종 전쟁이 미국 논리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계층,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전쟁에 찬성하지 않았으니까 일본 저자의 주장은 매우 잘못된
주장입니다.

일본은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대부분 원로를 통하거나
밀실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각종 기업의 합병이나 금융대출 등등 거의 이렇게 이루
어 집니다. 변호사들보단 대장성 관료나 정부부처 관료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 셈입니다.

일본의 법무대신은 변호사숫자를 늘리지 않는 이유로 미국 처럼 소송이 많으면 일본 사회가 붕괴
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소송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데 변호사라는 사람이
소송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일본인들이 만든 법률제도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10대 로펌중에 5개가 미국계열이 되고, 나머지도 미국 협력 로펌의 경영고문 등에 의해
사실상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일본의 관료주의에 의한
문제해결 관행때문입니다. 즉, 어차피 변호사에 의한 문제해결은 많지 않기 때문에(소송건수가
한국에 비해 수십배나 적습니다.) 문제가 되지 않는 것 뿐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예만 믿고,
로펌시장 개방에 대비를 게을리 하는 것이 참으로 염려됩니다. 한일의 차이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학자가 일본의 법률제도에 대해서 설명해 놓은 논문을 보면 정확한
실상을 알 텐데, 일본에서 공부한 학생이나 전문가라 하는 몇명에 의존하니까 불명확한 정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이 됩니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선 안되는데, 언제까지 일본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
볼 지 걱정입니다.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외국으로 진출해서 정말 세계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년 이년이 아니라 몇년씩 살아야 하고, 십만 이십만명 정도가 아니라 백만 단위 이상의 교류가
필요합니다. 인터넷만으론 전혀 세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책을 아무리 봐도 직접 가서 경험하는
것 보단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볼 때, 외형만 관찰하고, 해석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적 배경으로 판단한다면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기 쉬울 것입니다. 외형도 보고, 그 이유도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자기합리화를 잘 하는 아시아인의 특성상 왜곡된 이유로 설명할 때가 많겠지만 직접 부딛혀
살면서 진짜 이유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일본도 우리가 정확히 모르고 있는
정보가 더 많습니다. 전문가 몇명이 연구해서 알아 낼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한가지 프로젝트에 수백명이 모여서 협력연구를 해도 부족한데 전문가 한두명에 의한 용역보고서
로 대체되는 한국의 세계문화에 관한 연구는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건
참여하는 전문가의 탓이 아닙니다. 각 개인이 가지는 인지 한계, 경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각 학문간 협력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같은 대학안에서도 서로 대화조차 안하는 게 우리 학계
의 현실이니까요.

한국화를 한다고 하면서 귤이 회수를 지나 탱자가 되는 우를 더 이상 범하면 안되겠습니다. 통째로
들여오던가, 아니면 최소한 현지 전문 연구팀의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엘리트나 전문가 한명이면 다 박사고 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권위주의형
국가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연구나 논리적 합리적인 연구는 무시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론은 서양에서 과학적으로 주류이론으로 입증이 된 경우에도 한국에 들어가려면 기성의 전문가
들이 거칠게 반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문이 10년에서 20년정도 늦게 외국의 이론을 대학의
교육과정에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물리학이 한국 다르고 미국 다를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는데 한국의 엘리트들은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더이상
공부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 학설이나 이론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일단
한번 배워두면, 평생 같은 내용을 가르칠 수 있으니까 편하다는 것입니다. 평생학습이 자리잡을
수 있는 풍토가 아닙니다.

일단 고등학교 3년 지나면, 일단 의사가 되면, 일단 고시에 합격하고 나면, 특정 직급에 이르고
나면 공부에 진저리를 내게 하는 한국의 교육관행 때문이겠지요. 또한 직장생활 하면서 자기
계발할 시간은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야근까지 하면서 보고서 교정하고
타자수가 타이핑 해온 것 오자 잡아내고 하는데 시간 보내고 그래야 하는 사무직 직원이라면
더더욱 공부는 못하겠지요.

교육학이든 심리학이든, 혹은 철학이든 한국의 대학교육은 전부 이론 역사공부만 하다가 현대
이론이나 최신의 주류이론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그냥 역사의 한 단편으로 공부
할 뿐이죠. 학문과 실무가 연계가 되려면, 역사보단, 현재의 최신 이론으로 현장에 응용하는
방법에 관한 공부나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학문성과가 현장의 학생
들에게 잘 전달이 될 테니까요. 옛날 이론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만큼 세계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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