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의 차이

안녕하세요!
요즈음 읽고 있는 책이 언어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데보라 테넌(죠지 타운대 교수)의 “당신은
단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남녀의 언어사용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고, 비교적 공정
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 남성의 역할모델 찾기를 계층 문화하에서의 보스찾기로 그리는 것을 제외하면 남녀의 오해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1990년에 출판된 책인데 국내에도 아마 번역본이 있을 것입
니다.

그 동안의 남녀관계의 책들은 남녀의 차이를 익혀서 남녀가 모두 변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지만,
데보라 태넌의 경우에는 변해야 하는 것이라, 최소한 서로에게 덜 상처받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가
하는 말의 진의를 이해하자는 것이어서 상당히 공정한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
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차로 파티를 다녀 오는 길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맥주 마시고 싶지 않아요?”라고
묻지만 남편은 “안먹고 싶어.”라고 답을 합니다. 집에 와서 곧 아내는 화를 내고, 남편은 왜 화를 내는지
묻습니다.

아내는 “나는 당신한테 맥주를 마시고 싶은지 물어 봤는데, 왜 당신은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남편은 “당신은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면 직접적으로 얘길하지 왜 지금에야 화를 내냐”고 하죠. 그런데
아내가 화를 낸 가장 큰 이유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못 마셔서가 아니라, 자신은 남편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관심을 보여줬는데, 왜 남편은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즉, 아내가 남편에게
질문을 할 때에는 남편도 “당신도 그 영화 보고 싶어요? 그 공연에 가보고 싶어요?” 등으로 관심을
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설사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도 아내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정보를 주기 위해서만 대화를 하는 반면,여성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남자처럼 사전에 생각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신문을 읽거나 비데오
게임을 하는 중에 아내가 말을 건다면, 그것은 그냥 그때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 그전에 할
얘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란 거죠. 결국 남편이 신문을 읽기 전엔 그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타협할 여지가 없다고 합니다. 남편이야 신문 읽기 전에 얘기하면 되지 않냐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여성
을 전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란 거죠.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만 있어 온 남편, 여성 동료들 사이에서만 있어 온 아내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울 것입니다. 이성간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러할 것이구요.
소꿉장난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서로 다르게 자라 왔으니 서로의 다른 대화법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누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도 아니란
생각입니다. 서로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많이 하고, 같이 부부 역할에 관한 상담도 많이
받는 것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동양의 문화는 좀더 여성적인 면이 강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의 문화는 좀더
남성적인 면이 강하구요. 데보라 태넌의 글을 읽으면서 동양의 남성은 다소 여성에 가까운 대화법을,
아시안 여성은 서양여성에 비해 좀더 정서적인 면이 보였습니다. 부부만이 아니라 동서양의 국가들이
이렇게 서로 좀더 이해를 할 수 있고, 상처를 덜 받는다면 전쟁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장점은 과학적인 실험을 거친 새로운 정보들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근거는 없고, 개인 경험이나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들어봤을 법한 얘기만으로 개인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신뢰성이 보장된 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직까지 증명
되지 않은 것은 솔직하게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고, 미국에서의 실험이라 보편성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2년전부터 공부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 동서양의 문화차이와 조화방법이고, 남성과 여성의
문화차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사하다는 점을 많이 발견하곤 합니다. 심하게 논리비약을 하면,
아니 앞으로 연구해 보고 싶은 가설은 “목축 혹은 유목민족”의 육식위주 식단과 근육의 연관관계,
그리고 근육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연관관계 등입니다. 아시아인의 유전자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농경민족의 유전자와 채식위주 식단과 남성 호르몬의 양비교 등이 함께 필요하
구요.

지금까지 알려진 연구에 의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성과 충동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신문기사 들에
의하면 스웨덴에서 연구한 결과 이 세로토닌이 여성에게 더많은 작용을 하고, 이 세로토닌이
우울증과 만성불안증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는 나오지
않았다고는 합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여성이 걱정이 더많이 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동일시 해서,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미리 더 걱정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동양의 남성과 서양의 남성, 그리고 동서양의 여성 등의 식단, 단백질 섭취량 등을 비교
연구하고, 근육량과 열발생량 그리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양, 그리고 세로토닌의 양 등을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육식문화, 채식문화 혹은 유목문화, 농경문화와 동서양 각각의 남성 호르몬, 혹은
세로토닌의 양 등을 비교할 수 있고, 이것이 문화의 차이나 남여성의 문화차이 등을 낳은 것은
아닌지 인과관계를 연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 남성은 매우 논리적이고, 비판도 자유롭게 공격적인 면을 보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이 강하여 충동성이 큰 장점이 있습니다. 만일 제 가설이 맞다면 서양 남성들이 동양 남성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고 충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여성은 비판하기 보단 동의하거나 포용하기를 더 좋아하여, 논리적인 주장보단, 개인의
경험이나 지인들의 경험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의 연구결과인 남성호르
몬인 테스토스 테론이 적어서,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분비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여성들은 충동성이 억제되기 때문에 모험적이거나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기
보단, 과거의 경험대로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지속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가설에 의하면, 서양의 여성들은 동양의 여성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많은
근육량을 가지고 태어나니까, 동양 여성에 비해 남성 호르몬이 더 많아, 더 정서적이고, 지속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물론 이건 가설이고, 스웨덴의 연구처럼 세로토닌과 연계된 뇌부위 등을 동서양, 그리고 남성과
여성 등으로 비교연구해 보고, 다시 심리학 등과 연계된 연구를 해야만 증명될 수 있는 주장이겠
지요.

만일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나 남성 여성의 차이를 낳은 것이라면 평생을 걸고, 한번 연구해 볼만한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전 제 전공인 법학이나 관심사인 심리학 등에서 공부를 하겠지만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여러사람들과 같이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면 더 좋겠지요.

문화의 차이가 법의 차이를 만든다면, 세계인의 문화를 규명하고, 그러한 문화의 조화를 추구하여,
각국의 법문화를 연구하고, 세계 법문화이 조화를 추구하는 것도 평생을 걸고 한번 추구해 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존의 법의 연혁이나 역사를 추구해서 공부하는 연구방법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 되겠지요.

다양한 학제간의 공동연구가 기존의 법률문화의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꼭 법학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학문이나 사회의 각 분야에서 한계에 부딛
힌 연구과제들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원하시는 모든 일이 다 이루지길 기원드리겠습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언어학자인 데보라 테넌의 1990년 출판작이자
베스트셀러인 “당신은 그저 이해하지 못할뿐이다”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남성은 상하계층적으로 이해를 하고, 여성은 관계, 친밀도 등으로
이해를 한다고 언급하고 있지요.

남자는 문제가 제기된 것부터 순서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느네, 여성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여러개의 문제점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남성은 상하계층 개념하에서 기존의 연구결과를 신뢰하는 반면에, 여성은 기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이나 친구의 경험을 근거로 얘기를 한다는
연구결과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논리학은 토론의 규칙을 정해놓은 것으로 논쟁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로가 다른
의미로 용어를 쓰고 있다고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근거가 합리적인지 판단하여 합리적
으로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규칙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리적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할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경우에도 대학교육을 받지 않으면 비판적인 사고방식이나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논리”를 “사고방식”이라고 번역하지만,
나의 논리, 너의 논리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 되겠지요. 논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이거나의
두가지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비논리적이라고 해서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이 불가능한 언어사용이라고 봐야겠지요.

비교적 단순한 남성 호르몬 체계의 경우에는 연구가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고, 통상 하루단위
로 변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에 비해 호르몬이
다양하고 복잡하여 그 연구의 진척이 느리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한달내지 일정주기를 기준
으로 다야한 변화를 한다는 정도만 연구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스웨덴의
세로토닌의 연구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겠지요.

뇌과학에 있어서도 남자가 언어를 위해 사용하는 뇌부위와 여자가 사용하는 뇌부위는 전혀 다르
다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긴 같은 남자라 해도 오른손 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 언어기능에
사용되는 뇌부위는 다르다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정 뇌부위가 손상되어도, 다른 뇌부
위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고 밝혀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죽어서 기억 기능이 떨어진다고 알았지만, 최근에는 뇌세포 주위의 물질이 네트웍 역할을 해서
나이가 든다고 해서 기억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독서를 안하며 나이에 상관없이
기억력이 떨어지긴 하겠지만요. 훗.

반면에 공부방법에 관해서는 여성을 위한 학습방법이 연구되어져 있습니다. 아직, 남학생을 위한
학습방법은 연구 진척이 느린 편입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공통된 보편적 교육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개인 경험으로 세상의 문제를 다 알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점점 더 세상에 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데보라 테넌의 경우에는 기존의 남자/여자 논의와는 달리 어느 누구가 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오해로 인한 상처를 덜 받았으면 한다
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매우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연구로도 남자가 여성화가
되도록, 여자가 남성화가 되도록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최소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
지나치게 상처받는 것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테넌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데보라 테넌의 책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왜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책을 읽어서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100%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요.
더구나 만약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왜 본능적
으로 불가능한 일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고, 누가 더 옳으냐의 문제도 아니고, 단지 둘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다른 것이지요.

물론 데보라 테넌도 약간의 조정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있지만, 그건 스스로 바뀌는 것이지,
결코 강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여성은 공공의 장소에서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반면에 그녀는 남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자기만 말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있는 여성 참가자에게 질문을 하고, 비판을 자제
하면서 격려로 기회를 제공해 주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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