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께 띄우는 뒤늦은 청첩장

대통령님께 띄우는 뒤늦은 청첩장

사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통령님께,

영원히 신뢰합니다. 아들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에 어떠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버이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에 또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로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를 버린 당신은 아들 뻘 되는 네티즌들,
그리고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아는 만큼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이중잣대를 가지고, 남에겐 엄격한 기준을, 자신에겐 너그러운 기준을 사용합니다.
주관적 판단을 하고, 자기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에는 가산점을 주고,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가차없이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흔히 보통의 정치인들이란 이 세상에 객관적인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우선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선지자가 되어,
권위를 가진 자, 힘을 가진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로지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빨리 앞당겨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편법과 권위주의를 펼쳐서라도 나라만 성공하면 그들이 알아줄 것이니
지금 욕을 먹어도 민주적 토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들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님은 설사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하는지 확신이 없다 하더라도,
진실이 변화한다 해도, 잠정적인 진실이라 해도, 그것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끊임없는 관심을 주셨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합니다. 출처가 필요합니다.”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하는 자세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실의 추구가 아닌,
말꼬리 잡기의 토론에는 어김없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라시며
항상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빛은 나지 않더라도
반드시 지금 시작해야 하는 과제를 찾으셨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토론에 대해서는
“상대방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진정한 토론의 달인이 되어 갑시다”라며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제 토론 글만 보면 그렇게 날카로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꼴통이라는 말씀 자주 하셨었지요.

이번 주말이면 제 아내가 되는 친구에게 대통령님께서 제일 먼저 던진 말씀이 있습니다.
“이 친구 너무 날카롭지 않아요?”
“따뜻해요.”라는 친구말에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시던
대통령님.

생긴 것이 곰처럼 둥글둥글해서 따뜻하다고 알고 있는 친구를 아끼시는 마음이 계셨겠지요.
“얼굴이 잘 났다고 미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네.” 하시던 말씀도 하셨지요.

“결혼을 하긴 하느냐” 하시던 질문에,
이제서야 겨우 “네. 여기 청첩장이 있습니다.” 답할 수 있게 되었건만…
마음속으로 당신께 전합니다. 편지를 띄웁니다.

사랑합니다.
진정한 어른으로, 따뜻한 토론의 달인으로 성장하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따뜻한 남편이 되도록,
사랑스러운 미래의 자녀에게 대통령님과 같은 따뜻한 어버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리를 알아준다.’ 라는 어려운 말에 ‘지음'(知音)이라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성심성의를 다한다고 합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저같이 퉁퉁한 곰도 춤추게 하나 봅니다.
이제는 당신께 칭찬 받을 수 없지만, 제가 다른 이를 춤추게 해야 하겠지요.
저도 이제 보통 나이는 되었잖아요.
“바위처럼 뚜벅 뚜벅 걸어”갈 나이가 되었잖아요.

울지 않을래요. 눈물이 흘러도 울지 않을래요.
영원히 저와 저의 아내의 가슴에 살아 계시니까요.
누구도 뺏어가지 못하잖아요.

모든 이의 가슴에서 당신의 따뜻함과 격려가 춤추잖아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로 올림
2009.5.28

이 글은 카테고리: 삶의 향기에 포함되어 있으며 태그: , , , , , (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