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의 혁신이 어려운 것은 내부문제가 아니라 산업전반의 문제이자 자본주의 전체의 문제.

언론계의 혁신이 어려운 것은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데 따른 적응실패가 원인이 아닐까요? 언론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기존 경제체계의 한계가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통매체의 경쟁상대가 언론만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그들의 밥벌이를 기준으로 해 보면, 광고만이 유일한 발벌이인 언론의 경쟁상대는 방송광고에서 포털검색광고로, 포털 배너광고에서 검색키워드 광고로, 다시 인터넷 광고는 모바일 광고로, 모바일 배너광고에서 다음 기술 광고로 넘어가겠지요. 오로지 인맥관리와 처세술에 의한 영업이 아직도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광고시장의 거대한 손인 삼성 등 대기업이 과거 마케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블로거들을 전통매체의 기자들처럼 대우하고 자기들 홍보를 해 주지 않으면 비행기 티켓을 반납하라는 식의 에피소드가 나온걸 보면 말이지요.

이건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인데요. 뉴욕타임즈나 타임즈라고 해도 별 소용이 없고, 미디어의 황제 워너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요. 미디어는 점점 디지털, 인터넷, 무선 모바일로 넘어가는데, 미디어 컨텐츠 소비 환경은 점점 소비자들이 돈을 내고 싶어하지 않는 공짜로 여겨지는 디지털 컨텐츠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나 유형의 매체는 뭔가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디지털은 투자 자체가 없는 것처럼 여겨져 공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럼 광고 등으로 부대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광고시장은 알다시피 기업으로 한정되어 있지요. 절대적으로 경제상황에 의존해야 하지요.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현상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요. 전쟁이 없으면 절대로 스스로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하지요. 뉴딜정책이 미국의 경제를 살렸다는 신화가 케인즈언 등 엉터리 개입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구요, 레이건, 마가렛 대처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신봉자들의 성공덕분에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것도 사실이지요.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정책이 수익가능성이 큰지 살피는게 신자유주의의 기본이지요. 신자유주의를 그렇게 비판하는 꼴진보도 국회의원 활동을 하면서 비용편익분석을 제출하잖아요. 시스템이 이념보다 관성이 더 큰 탓이지요. 결국 이념보단 시스템 개혁을 할 수 밖에 없는 건데요.

달러가 전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 미국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지요. 역사속 전쟁이 없었던 유일한 지대가 미국인 시대가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중에 유럽에 전비를 대출해준 미국이, 전후 패전국인 독일의 엄청난 배상금을 대주기 위해 대출을 해 주면서, 자기가 준 배상금명목 대출금을, 승전국인 유럽을 거쳐 전쟁중 대출의 반환으로 다시 받으면서 돈이 선순환하며 엄청난 금융 거품이 발생한 것이죠. 달러는 이렇게 기축화폐가 된 거지요.

그러니 인플레 등등 거품경제가 되고, 공황이 되고, 세계공황이 되었으나, 뉴딜정책은 실현될 수가 없었죠. 대법원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임대통령들이 임명해 놓은 탓에 모두 뉴딜정책법안에 대해 모두 위헌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대통령이 워낙 오래 해 먹다 보니(4번) 대법관들이 먼저 죽거나 고령을 이유로 종신직 대법관에서 은퇴하게 되면서 2차대전중에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들로 바꾸고 나서야 뉴딜정책을 펼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전쟁이 왜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를 해결해 준걸까요? 경제성장에 가장 좋은 것은 성과물 없는 곳에 무조건 자본을 투입해서 거품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전쟁만큼 좋은 성장방법이 없지요. 예를 들어 건물을 짓고 부수고 짓고 하면 어떻게 될 까요? 건축업자 입장에서는 이 만큼 큰 장사가 없지요. 사회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되지만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위기가 원천적으로 해결될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자본주의만으론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미국은 달러를 찍을 수 있는 나라이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부분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저가상품을 대량구매함으로써 상세시킬 수가 있었지요. 재정적자,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됨에도 엄청난 내수시장으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저가 중국상품 수입과 중국, 동남아, 인도, 브라질 등으로의 아웃소싱(미국의 고객들이 상담을 받으려고 전화를 걸면 인도의 직원이 전화를 받죠)을 함으로써 해결하고 있지요. 덕분에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이 혜택을 받아 경제성장을 한 것이구요. 룰라 대통령만 추종하는 사람들이 몰라도 한참 모르는게 이거죠.

그런데 문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경제성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사람들도 인플레이션, 물가상승을 가져올 것이니 결국 시간만 지연될 뿐 자본주의의 한계 즉, 성장에 앞서는 물가상승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즉 저비용 저효율경제를 고비용 고효율경제를 바꾸기 위해선 특정부분의 물가를 아웃소싱, 제3국의 저비용 생산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나라도 일본이나 미국을 본받아 문맹률이 높고, 대학졸업률이 높은 동남아 나라를 골라 투자를 해서 이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요.

결국 교육률, 문맹률 등에서 중국, 인도나 브라질 다음으로 미국에게 저비용 생산력을 제공해줄 나라가 있을까요? 동남아가 유일한 잔류지이지만 여기도 곧 한계가 다가 오겠지요. 사실 동남아는 규제가 심해 외인투자를 하기엔 부적격이니 문제가 있지요. 이렇게 해서 결국 고비용, 고효율의 미국형 경제가 한계에 부딛힌 것입니다. 거품은 언젠가 꺼지니까요. 다만 거품이 언제 꺼지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생명이 끈질기다는 것 때문에 거품으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지만요.

결과적으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유럽은 이미 구세계이고, 미국보다 더 비효율적이니 경제모델로는 부적합하구요. 이념이나 이상주의는 더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구요. 이미 예전에 실패한 경제모델이니까요. 이념이니까 혹은 그게 상식이니까 하는 것으로 국가경제나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형 경제모델을 어떻게 고쳐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우리나라의 존재가치가 빛을 발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유심론이 어느정도 남아있고, 무조건적 모성애가 아직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우리 수준의 건강보험과 심리적 지지선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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