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를 넘어, 평등으로. 주권자 시민의 각성은 반성부터.

헌법상 보호받는 평등권을 포퓰리즘이라고 무시하고, 권위주의는 잘못이지만 권위는 지켜줘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 엉터리 성리학, 임란이후 교조화된 엉터리, 부패한 조선 양반문화인 가부장제 등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얘기인 윤리는 매우 잘못된 접근이지요.

공자의 사상도 아니구요. 특히 동양의 법가사상을 법치주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응보주의가 법치주의와 구분되듯 전혀 다른 것입니다.

주권이 시민에게 있고, 헌법상 공무원은 상관이 아닌 국민전체에 봉사하도로 규정되어 있는데 마치 국가가 황제고, 대통령이 왕인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국가가 아니면 누가 널 지켜주느냐고 하는데, 국가나 장군들이 아니라 우리의 형누나, 동생 자식들인 사병들이 나라 지켜주는 것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말입니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나까 당연히 보호를 받는 것이구요. 국가를 내세우면서 사실은 자기의 권위를 지키겠다는 감정주의일뿐아지요.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내가 너보다 당연히 대우를 더 받아야 하는데 대우를 안해주니 감정, 빈정이 상했다. 그러니 내가 틀린 주장해도 입 다물고 있어라. 마치 부부싸움하면서 내 감정이 상했으니 내가 무슨 말 해도 참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본능, 감정에 집착하는 것 뿐이지요. 약자인 아동들이 유상급식하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저 아이는 혜택을 보는 아니야라는 비난을 듣는 감정이 상하는 것과 자기들 권위, 학벌, 나이를 대우받지 못했다고 감정이 상하는 것이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고, 자기가 힘이 더 있으니 자기 감정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형적인 비합리주의이고, 비이성적 사고방식이지요.

평등한 상황에서 누구의 주장이나 그 근거들이 충분히 있는지. 그 근거들이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생각의 오류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검증하여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니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못믿겠다. 니 말은 팥으로 된장을 만든다 해도 믿겠다. 저 사람은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라는 속담의 모순처럼 우린 길가다 만난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때문에 주장과 근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문화적 폐단이 있지요. 이건 일본식 권위주의, 임란이후 왜곡된 엉터리 권위주의의 사대부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평등하게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약육강식을 말하며, 각자 자기나름의 직책 권위주의를 말하며, 강자의 감정상함이나 약자의 감정상함은 같은 것이고 약자가 피해를 봐야한다는 사고에 젖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대우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심합니다.

불치하문.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에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의 권위나 과거의 직책, 사람의 인품이 아니라 현재 그가 옳은 근거를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단지 그의 주장이 나의 주관적 인상적 평가에 옳다고 지지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단지 내 감정에 거스르기 때문에 넌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도 안될것이구요.

국민의 의견을 듣는것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 말고, 국민도 왜 나를 가르치려 하느냐, 내 말을 들으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무릇 정치인, 리더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 투표를 걸고, 목숨을 걸고 간언을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정치인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충언, 간언을 하고 목숨을 걸어 정권이 바뀌고 다시 과거 정권을 재평가하고 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마치 자기가 현재의 주권자, 임금인데 왜 신하인 대통령,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느냐, 내 말이 곧 벋이다라는 식으로 공부하지 않고 감정에 싸인 요구만 한다면 이건 옳은 것일까요?

집단지성시대에 국민을 깔보고 가르치려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주권자인 국민 전체의 하나로써 그 역할에 맞는 공부는 하고 있는지, 신하인 대통령, 정치인, 관료들의 충언, 간언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나만을 위한 감세, 부동산값올리가, 환율높이기 등 간신의 교언영색에 기분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를 말입니다.

신하로써 대통령이 이런 저런, 충언, 간언을 하고 있는데, 정치세력을 목숨을 잃고, 선거에서 패배를 각오하고 간하는데, 정작 현대의 왕인 주권자들 시민들은 왜 나를 가리치려고 하느냐고 짜증내고, 왜 나에게 귀찮은 일을 시키냐며 잘 살게 해주겠다는 교언영색에 속아 잘못된 주권행사, 투표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럼, 간신의 교언영색과 목숨, 정권교체를 건 충신의 간언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요? 당신이 좋아하는 장미빛 살림살이 얘기만 하면서 다신 한번만 더 정권맡겨달라는 사람들은 교언영색. 감정에 잘 안맞고, 내가 공부안한다고 타박하면서 정권을 잃더라도 나중에 이해해주실거라면서 끊임없이 귀에 거슬리는 얘길하는 사람들은 충신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정치인 그룹에서 후계라는 자가 앞의 사람은 잘못이 많고 자기는 잘 할것이고 국민여러분깨 감정에 잘 맞는 것을 하나씩 다 주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정에 호소하니 옳은 것일때도 있고 틀릴때도 있는데, 옥석을 가릴려면 자기 선배의 간언, 충언을 안따르고 교언영색하려는 자는 배척하면 될 것입니다. 마치 계승한다고 하면서 이건 과오니까 반성하겠다면서 국민의 귀에 달콤한 얘길 하는 사람은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정권 안 잃으려고 하면서 자기는 충언을 한다면 믿지 말아야하구요. 국민 귀에 거슬릴 수 있고, 그래서 정권을 잃으면 어쩔 수 없지만, 노력해서 나중에 국민여러분들로부터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람은 믿을 수가 있겠지요.

이 글은 카테고리: 사로 칼럼에 포함되어 있으며 태그: , , , , , , (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