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은 지능과 달리 훈련가능하다고 하네요

“비록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또 그 합리성 안에도 개인 차가 있음을 의미합니다.””적어도 합리적 사고의 경우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 veritaholic, “지능과 합리성의 차이”, 2016. 10. 16, http://newspeppermint.com/2016/10/16/m-rationality/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할 때 기질이나 성격을 말하고, 지능도 후천적으로 학습되지 않지만, 합리성 정도, 확증 편형적 정도는 후천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확증편향적, 죽 주관적으로 인상평가하고나 직관으로 입장을 정하고 그것을 합리법칙, 논리법칙과 달리 스스로 엉터리 자기 합리화를 하고, 계산이 빠는 지능좋음을 수학의 오류나 통계의 오류에 쉽게 속는 방향으로 비합리성이 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린 흔히 사람들이 비합리적이고, 인간 본성 그대로가 비합리적이라고 비약한다. 이건 마치 법이 없으면 인간이 인간이 해를 끼치는 것이 본능이므로 괜찮다는 것과 같다. 즉, 회의주의적으로 접근해서 모든 인간이 비합리적이므로 합리성 잣대로 세상을 보면 안된다거나, 인간은 모두 주관적이고, 객관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이며, 이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이른다.

이건 마치 자신의 주장은 상식이고, 무조건 옳으며, 그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에도 다다른다. 결국 우리나란 이런 확신범들의 나라, 비합리성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동북아 4개국에서 사기가 빈발하고, 특히 보이스 피싱, 권위주의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범죄가 빈발하는 이유는 모두 IQ가 높아 계산이 빠르긴 하지만 그 계산의 오류를 발견하는 합리성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 역시 합리성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이해되지 않으면 외워라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주장하고 주장을 계속하면 국민이 믿는다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즘에 기대도록 학습시킨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모두 비합리적이고, 이건 기질로서 변화하지 않으므로, 이걸 변화시키려는 것은 계몽주의, 교조주의로 거부해야 한다는 식의 엉터리 주장이 난무한다. 개다가 국민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므로, 합리적 논거를 가지고 접근하면 안되고 그들의 방식대로 가야 한다며 정치공학자들은 얘기한다. 그저 단기적으로 정권교체, 총선승리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조급함의 문제이다.

각성된 시민을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요소로 하고, 정보가 알려진 다음 선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권주의자들은 시민은 원래 비합리적이고, 정보를 주면 오히려 국가가 혼란스러워지므로 모든 정보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귀찮아지는 것이 싫으므로 시민이 각성되거나 합리적으로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당국자들이 많다.

합리성과 지능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과거 우리 고시제도는 지능에만 기대고 합리성은 버리고 말았다. 그 어떤 교육과정에서도 일반적으로 합리성 훈련은 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논리적 글을 써야 하는 논술 교육조차 “이 세상의 착한 사람은 파리 경찰서장”이라는 식의 암기로 해결한다.

도대체 왜 서양사회에선 존재하지 않는 사기범죄, 보이스피싱이 우리나라, 중국, 대만, 일본의 순으로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그만큼 지능만 발달하고 스스스로 계산이 빠른 능력의 함정에 빠져 수학의 오류, 통계의 오류 등에 쉽게 빠져 권력기관의 권위주의에 기대어 손해를 덜 보려거나 이익을 쉽게 보려하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우리가 똑똑하지만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합리성 정도는 훈련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한다. 교육이 바뀌면 헬조선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보이스 피싱 등 수많은 사기범죄에 당하는 이유도 이 비합리성 때문 아닌가. 교육을 바꿔야 한다. 이건 변하게 할 수 있다. 

야당은 선거 시기를 절호의 시민 교육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더이상 단기적 승리에 조급하여 정치공학을 따르고 적당히 시류에 타혀하려 하지 말라. 당신이 패배해도 절대로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시민과 함께 선거시기 공부하고 발전해 가려 하지 않고 그저 시민의 약한 부분에 기대어 정치공학으로 이기려 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후배인 차차기 주자와 선배인 전직 민주 대통령들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질 수 밖에 없다면 정치공학에 귀 기울이지 말로 정도를 걸어가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의 역할이고 의무있는 일이다. 그것이 당신의 숙제이다. 숙제를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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