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론으로 살펴본 문화의 차이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에는 참여가 많이 필요한 토론수업이나 분쟁해결, 소위 협상이나
조정이라고 하는 수업을 듣고 있어요. 수업후에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여러주에서 온 미국 친구들 등과 1대1 혹은 2대2, 6인패널 협상 등등을
연습하고, 결과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수업이 있는대 굉장히 흥미로운 수업
입니다.

다양한 나라, 각종 배경이 다른 친구들의 협상습관 등을 옅볼 수 있는데다가
심리학적 접근, 경제학적 접근, 평등주의적 접근, 미국식 자본주의적 접근(
벤덤의 공리주의 혹은 유틸리티이언_한국식 천박한 자본주의와는 틀리더군요),
대륙법적 원칙주의와 혼동되는 보수주의적 혹은 유연성이 부족한 접근방법과
미국식 협상주의 등등이 다양하게 부딛히는 현실을 많이 경험해 볼 수 있엇
지요.

사람마다 다르다는 식의 회의적 접근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요. 왜냐하면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가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점들을 교훈으로 삼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공통점만 찾아 친구
만 되어버리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니까요. 단일민족 국가를
자랑으로 생각하고 한국적인 것만이 최고다라는 생각은 남에게선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라는 배타적인 생각이 되어 버립니다.

반면에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성장의 거름
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럴려면 전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개방성을 넓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입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있고, 개인에 따라서는 전혀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강하게 작용해서 쉽게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 할 수 있는 사람
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아마 감성지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네요.

문제는 소위 원칙을 지킨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는 것과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받아 들인다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겠지요. 쉽게 나의 장점과 상대방의 장점을 택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구나 얘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 것만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이상 상대방의
장점은 절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직접 경험을 해 보고 그 이유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단점은 감추고, 상대방의 장점은 무시하려는 선택적인 인지만을 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소위 selective perception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이든, 미국
이든 그 문화의 외면, 현상만을 보고, 한국의 가치관 그리고 혹은 미국의 가치
관으로 바라보게 되면 절대로 상대방의 장점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현상이 아니라 그 이유, 배경,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비교문화라거나, 문화인류학이라는 관점에서 남이 연구해 놓은 것만을, 혹은 미국
이나 독일의 학문만을 공부해 보아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양이든
동양이든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 경험한 연구결과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미국 최고의 의학부인 하버드 메디컬 스쿨을 나와도 한국의 아이가 왜
먼저 않지 못하고, 뒤집기 부터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존의 연구논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아이를 보고, 미국의 아이를 옆에서 실제로 본 평범
한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아이는 머리가 크게 태어나서 통상
미국인 기준으로 하면 상위 10%이내의 덩치큰 아이가 되어서 무게중심이 상위에
있어서 6개월이 되어도 앉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아이는 머리가 아주
작게 태어나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고, 오똑이처럼 쉽게 앉을 수가 있지만
뒤집기는 못합니다.

물론 이 때문에 엉덩이가 넓은 서양어머니가 머리는 훨씬 작은 아이를 낳기 때문에
산모가 애를 바로 낳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길거리를 나다닐 수가 있는 것이죠.
반면에 엉덩이가 작은 동양 어머니는 훨씬 큰 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으니 찬물샤워
는 어불성설이 되는 것이구요. 이런 것을 왜 의사들은 모르는 걸까요? 미국 의사는
한국아이를 잘 접해 보지 못했으니까 모르는 것이고, 그래서 동서양의 차이에 관한
의학논문이 없고, 한국 의사는 미국 논문만을 베끼고 있으니까 관련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대도 나오지 않은 평범한 아버지가 아는 것을 정작 최고의
의대를 나온 의사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여러차례 한국 아이를 받아본 하버드대 출신 산부인과 의사,
더군다나 미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산부인과, 소아과 병원의 의사들 조차 왜 동양인
아이가 황달로 진단되고, 낳은지 3일만에 응급호출되어 병원으로 다시 가서 치료를
받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답은 뭘까요?

동양인이 노란 황색인종인 것은 왜일까요? 멜라닌 색소가 많기 때문이죠. 백인들의
기준으로 하면 평범한 동양인 아이는 황달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왜 모르는 걸까요?
아무도 응급상황 호출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으니 미국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것이죠.

이것 뿐만이 아니죠. 우리는 애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교를 한다고 태교음악이다
뭐다하는 대다가 심지어 임신때부터 태교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은
2005년초에서야 12개월 미만의 아이도 인지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합니다.
이렇게 동서양의 의학조차도 서로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습니다. 기껏
비교연구를 한다고 해도 새로운 시도보단,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대 그치고 있구요.
그러니까, 미국의 논문이나 일본 등 외국의 논문만을 베끼면서 창의적인 연구는
하지도 않는 동양, 특히 한국의 학문이 발달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저는 법학도이니까, 우선 법학 분야에서 만이라도 이런 연구를 확실히 해 보려고
합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고, 도덕은 그 사회의 종교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이 됩니다. 그럼, 그 사회에 대한 연구없이 어떻게 법학 연구가 되겠습니까?
문화인류학, 심리학, 그리고 언어학의 도움없이 어떻게 법학자 단독으로 외국법에
대한 연구가 될 것이며, 국제법에 대한 연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생이 줄어들어서도 아니고, 취업율이 떨어져서만도
아닙니다. 학문간의 협력이 사라지고, 심지어 통합적인 접근을 하는 논문은 어느
학회에서도 논문으로 접수를 해 주지 않는 폐쇄적인 학계의 현실이 바로 위기를 가져
온 것입니다. 서로 토론을 하고, 상호 연구에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하는데, 경제적인
요인이 없으면 협력조차 하지 않는 현실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협상론에 관한 얘기를 통해서 통합적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배운 협상론은 어떻게 하면 이기는 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각 문화권의 차이점을 어떻게 이용해서 협상에서 많이 얻어낼 것인가 혹은 적게 줄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정치적인 이유나, IMF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지는가에 관한 협상론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대륙계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들, 유럽이나 남미, 중국 등 중화문화권과 일본,
그리고 한국출신의 협상태도는 통상 경직한 자기 입장고수하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옳다는 이유가 한가지만 있다면, 특히 그것이 진보, 보수,
민족주의, 혹은 좋은게 좋은것이라는 외교적 입장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협상은
끝이라는 것입니다. 제3, 제4의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둑으로 하면 한수씩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는 매우 유연한 협상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이 협상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도덕적이거나 죄책감 등은 일체 무시되기 때문에 매우 자신감 있고,
때로는 뻔뻔하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할 만큼 낙천적인 사고를 합니다. 참고로, 미국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경우 단순히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사기가
되어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이 되거나 미스레프리젠테이션이 되어 징계를 받게됨) 비교
적 협상하기가 좋다고 합니다. 물론 MBA출신 협상가들은 합법적인 협상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다소 다른 편입니다. 한국의 경우 이런 협상이론 들만이 들어와서 불법
적이면서도, 무조건 이기기 위한 협상론만이 교육이 되고 있는 문제점이 있지요.

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모든 것은 협상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한 배울 점이라 생각
합니다. 내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더라도, 협상을 위해서는 그것을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내가 입장을 지키고, 상대방도 입장을 지킨다면 어떠한
협상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예를 더 들면, 협상에 관한 베스트셀러인 예스를
얻어내는 방법의 내용은 역설적으로 예스를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대방에게 예스를 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기기 위한 협상, 윈윈이 아니라 무조건 나의 이익을 최대화 하기 위한 협상론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장기간에 걸친 신뢰를 구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네트웍
으로 모두가 묶여져 있기 때문에 한번 이길 수는 있지만, 영원히 협력할 수 있는 친구
만들기에는 실패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칠게 FTA에 관한 것에 적용을 해보지요. 한국과 미국, 어떤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어떤 것은 받아 내어야만 한다는 생각보단,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서 제3세계에 진출
하는 분야를 만들면 어떨까요. 파이를 키우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하려면 한국내에서의
각 산업분야별 협상이 있어야 하죠. 무조건적 반대나 FTA의 이익인 모두 자기들만 챙기
려고 한다면 일단 내부협상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는 분야가 있다면 이익을
보는 분야에서 도와주거나 최소한 제3의 대안을 제시해서 양보를 받아내어야 하죠. 정부
에만 맡겨두고 있을 일은 아니란 것입니다. FTA로 늘어나는 수출업계의 이익을 나누어
줄 수 없다고 해도, 그렇게 늘어나는 분야에 대한 법인세 등은 기존의 예산 분배비율이
아니라 교육, 복지, 농업 등 FTA로 손해를 보는 분야에 더 많이 분배되도록 조정할
수는 있겠지요. 보조금 금지에 걸린다면 교육비 지원이나 의료비 지원등으로 합법적으로
농민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죠.

그런데 현실을 한번 볼까요. 산업계나 정치권이나 모두 FTA로 인한 득실만 따지고,
손해를 보는 상대방을 위한 양보나 상호 윈윈을 위한 협상은 전혀 없고, 성장이냐 분배냐
하면서 여전히 이데올로기 주도권 싸움만 하고 있지요. FTA를 해서 이익이라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이익분배를 정해야 하고, 협상을 하는게 손해라면 그로
인해 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시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지요. 협상은 없고, 정치나 시위만 있는 나라는 발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기기를 원하면 먼저 양보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전제가
되는 것은 양보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진실,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
하고 져줘도 져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간디의 비폭력운동 역시 진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게 좋은 것이니까 남이 잘못하고 있어도 그대로 지지
해 준다는 것이 비폭력운동이 아니란 것이죠. 대화로 진실을 알려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위한 가장 큰 첫 걸음은 상대방을 나의 가치관이 아니라,
상대방의 가치관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100% 옳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이니까요. 그렇다고 0% 옳은
것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의 적에게서 조차도
말입니다. 라이벌이 없다면 나의 약점은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기지 못해서
기분나빠 하지 말고,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세상에는
적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벌이 두렵고, 누군가
여러분을 기분나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십시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비겁하다거나 겁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화를 내고, 그 사람을 공격한다고
해도 여러분이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친구가 될 사람을 잃게 될 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추신) 앞으로는 동서양 문화의 차이점, 그리고 그 이유, 서로 보완할 점 등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법이 다르다면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고, 서로의 문화를 보완할 수
있다면, 서로의 법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국제법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럽과 미국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에서, 중국과 서양
문화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으로의 발전을 가져오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보다 더 동양적인 한국과 유럽보다 더 서양적(구유럽에 가까운)인
미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장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대 산부인과 의사들도 모르는 사실이지요. 몽고반점 정도만 알고 있으니까요.
부모는 산만큼 큰대도 애기들은 전부 작아요. 머리만 작은게 아니에요. 그러다가
6개월이 지나면서 부터 역전이 됩니다. 그 이유는 서양 아이는 이빨이 빨리 나기
때문에 고기관련 이유식을 먹을 수가 있어요. 닭고기나 햄이 들어간 애기 음식을
먹을 수가 있으니까, 급속도로 크기 시작하지요.

서양의 광고를 보면 아주 어린 애기들이 너무나 잘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서양 기저귀 표지를 보면 알 수가 있지요. 그런데 얘들은 뒤집기는
못하기 때문에 앉고 눕기만 할 수 있어요. 무게중심이 한국 아이들에 비해 아래에
있으니까 자동으로 앉을 수가 있거든요.

다만, 이빨이 빨리 나느냐의 여부는 한국의 경우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빨리 나는애도 있고, 늦게 나는 애도 있으니까요. 제 추측은 북방족의 조상을 가진
한국 아이는 유목민족의 특성상 이빨이 빨리 나고, 남방 농경민족의 후손인 한국 아이는
이빨이 늦게 나는 것 같아요. 쌀을 먹는 민족은 굳이 이빨이 빨리 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제 추측상 이빨이 빨리 나는지와 아빠/엄마를 먼저 하느냐도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통상 맘마(마실 수 있는 것)/마/빠빠(이빨로 먹는 것)/아빠의 순서로 애기들이
말을 하니까요. 반대로 전형적인 미국 애기는 다다(대디:아빠)/마마의 순으로 얘기를 합니다.
이빨이 있다면 D발음을 내기가 더 쉽기 때문이지요. 왜냐면 마마의 m은 입을 꽉다물고 콧소리를
내어야 하는 것이니까 이빨이 빨리 나는(6개월 이전에 고기먹을 수 있게) 미국 애들에겐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힘들고, 혀가 이빨이나 천장에 닿을 때 나는 소리인 다다(D)발음이 더 쉬우니까요.

더 나아가서 추측한다면, 세계 공통으로 엄마, 아빠라고 한다고 해서 역사상 교류가 있었다고
하는 가설보단, 농경민족/유목민족의 이빨이 나는 시기와 음식문화가 비슷했던 것이 아니냐는
새로운 가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비교의학이라고 해서 민족/나라의 차이에 따른 의학적 차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
니다. 물론 아직 초기단계 인데다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주류만을 상대로 연구하고
있어, 아시아와 유럽인을 비교하는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에
유학을 오더라도(포스트 닥터라면 거의 한국 환자만 치료하거나, 병리학적 연구에만 종사하죠)
비교의학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게 현실이에요.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을 만든 것을 생각
해 보면, 혹은 사상의학이라든지 등등의 우리 의학을 만들어낸 조상에 비하면 너무나 연구가
느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긴 의대에 간 다음에 의사가 되고 나면 아무도 더이상의
학문적 연구성과를 낼려고 하지 않는게 문제지요. 남이 하지 않은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굳이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지요. 연구를 안하고, 공부를
안하는데 어떻게 노벨상을 받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겠어요. 미국 논문이나 짜집기
하고 있거나 임상논문만을 쓰고 있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SCI논문 숫자 혹은 인용지수가 높아지면 노벨상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지요. 창의적인 아이디어 없이 무슨 노벨상을 기대 하겠습니까? 마치 특허숫자가
많다고 특허에서 나오는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과 같은 얘기죠. 왜 미국에서
버클리 대학출신 다음으로 많은 미국 박사를 만들어내는 학교가 한국에 있고, 미국의 한국인
교수가 10%가 다 되어가는데도(대부분 이공계 교수님) 미국 교수 10명이 노벨상을 받을 때,
한명의 한국인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요?

한국은 지원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미국에서 박사받고,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이들은
노벨상은 받지 못하냐는 것이죠. 창의성은 IQ 즉, 기억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다양만 문화를 접하느냐, 얼마나 많은 책을 평생에 걸쳐서 읽어가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부를 멈추어 버리거나, 혹은 자신의
전공만을 공부하고 있다면 아무리 24시간을 연구실에 있다고 해도 창의적인 생각은 나올 수가
없지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다양한 학문의 공부 혹은 교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법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법심리학(?)을 알수가 있겠습니까? 교육심리학
책을 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교육학의 원전과 심리학의 원전을 공부해야 하고, 실전에서
아이들과 부딛히면서 한국화를 해 가는 것이 필수이지요. 그냥 미국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서 교수가 되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인문학의 현실은
이점에서 심각한 결함이 지니고 있지요. 평생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만큼 인간을 게으르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왜 평범한 아이 아버지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도 평생을 산부인과만 공부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죠. 아니 사실은 공부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결정적으로 비교의학이든 비교법학이든 간에 한국의 학계에서는 전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미국에 갔으면 미국애들하고 경쟁해서 이겨내야지 무슨 비교며, 한국것
가지고 미국에서 박사 받으면 그건 가짜가 아니냐 하면서 남을 낮춰 보려는 정서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요?

책을 쓰려면 새로운 내용을 써야지, 미국 책을 번역하는 게 무슨 학문적 업적이냐며, 아무도
연구업적으로 인정을 하지 않으니까, 어떤 교수도 미국 학문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성공가능성 있는 것만 번역이 이루어지니까, 우리나라의 학문은 점점 더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게 되지요. 물론 번역 책이 팔리지도 않고, 교수가 강의하는 책도 복사를 해 버리는
우리 대학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외국 학문의 한국 소개는 요원해지고, 비교학문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반면에 일본은 각종 학술번역서적에 대해서 각 공립 도서관 등이 의무적으로 책을 구매하도록
하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책들이 일본에 소개가 됩니다. 물론 일본인은 미국으로의 유학이 줄어
들고 있기 때문에 비교연구가 여전히 되고 있진 않습니다만.

안동진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진화여부와는 상관성을 알 수가 없겠습니다만은, 제 추측으로는
아마도 농경위주의 민족과 유목민족과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
민족으로서는 이동이 쉽고, 어머니의 보살핌이 적어도 되는 머리가 작은 아이, 그리고 이빨이
빨리 나서 빨리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는 아이가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반면에 농경민족은 이동의 필요성이 훨씬 적은 차이가 아이머리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한미간의 다양한 차이점에 관한 사이트를 만들어볼까 싶습니다. 실제 사진을 첨부해서
비교가 쉽게 하면서 말이죠. 사실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한국 버전을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습
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주의의 입장에서 불균형적인 서양인의 시각으로 쓴 책보단, 균형적인
한국인의 시각으로 세계화와 하모니즘에 대해서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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