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이유도 일본 제국주의 잔재?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와 문화인류학의 오해-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영어논리와 법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의 과거사 청산의 장애와 대통령께서
UN총회에서 발표하신 제국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를 생각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주제인 아시아인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비판을 못하고 권위주의를 추종하거나
대통령만을 공격하는 언론의 이유기도 합니다)와 문화인류학의 한계 등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어찌보면 문화인류학이란 학문이 결국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발달한 학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명분은 미개한 피식민국가의 문화를 대신 연구해 준다는
것이지만 일본이 한국에 한 것 처럼 건전한 민중의 사료는 모두 없애고(문화통치의
명분), 불건전한 사료만 남겨둠으로서 어차피 누군가의 지배를 받을 나라였고,
오히려 문화를 발달시켜준 식민지 국가에 감사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파하죠.

저는 인디언이 아시아에서 빙하를 타고 미국에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문화
인류학에 회의를 품습니다. 어떤 증거도 없지만 우선 그 의도가 의심스럽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인디언도 아시아에서 건너온 이민에 불과하므로, 나중에
건너온 이민들은 미국이 인디언의 땅을 빼앗아도 별다른 도덕적인 잘못은 없다는
식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생각할 때에는 언어의 유사성이나 문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유목
민족(북방계)이냐, 농경민족(남방계)이냐에 따라 다른게 아닌가 생각해요. 왜냐하면
고기를 먹는 문화에선 당연히 아기때 이빨이 먼저 나는 종족이 우성진화했을 것이고,
농경으로 생산한 쌀, 밀, 그리고 옥수수 등의 식물의 가루를 먹는 문화에선 아기도
굳이 이빨이 먼저 날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기능이 먼저 발달했을 것이구요.

이것은 미국 등 서구의 아이들이 이빨이 먼저 날때 딱딱 마주치는 습관에서 제일
먼저 말하는 언어가 다다 혹은 대대(대디의 첫글자)이고, 동양의 아이들은 이빨이
늦게 나서 입을 오물거리면서 엄매 혹은 마마라는(엄마의 첫글자)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단어들은 문화인류학의 주장처럼
문화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에서 나온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아이의 경우 엄매, 마마(젖이나 우유), 바바, 빠빠(이유식), 아빠
라는 식이요법과 관련된 언어 발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역시
유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고기 이유식을 먹이고, 이빨도 훨씬 빨리 납니다.
물론 한국은 이빨이 빨리 나기도 하고(북방계), 늦게 나기도 해서(남방계) 소아과의
기준은 폐지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외에도 신체적 발달과정의 차이도 있지요. 미국애들은 얼굴이 작게 태어나기
때문에 기기 보다는 앉는 것을 먼저합니다. 앉고, 기고, 일어서는 단계이지요.
반면에 한국 등 아시아계는 미국애 두살애들 처럼 큰 머리를 갖고 태어납니다.
균형이 안맞으니 잘 앉지를 못하고, 기기부터 먼저하고, 앉기, 일어서기를 합니다.
미국 소아과는 이런 차이도 모릅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도 북방계(얼굴이 큰
경우), 남방계(얼굴이 작은 경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소아과의 일률적인 발달
기준표는 이미 폐지되었습니다.

우리가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고, 수많은 관광여행객들 등으로 자칫 교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가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등의
적극적인 교류가 아니라 강대국의 언어나 문화를 배울 것을 강요하거나 약소국
역시 자기들의 언어를 사용해 홍보하려고만 하는 교류를 해 왔기 때문에 아빠가
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런 간단한 차이점조차 서로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만 소아과 의사를 하면 수십년해도 통모르는 사실입니다.

문화절대주의 혹은 문화상대주의 둘중에선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문화상대
주의가 그럴듯 해 보이지만, 실은 강대국 입장에선 미개문화라고 비웃는 근거가
되고, 또한 문화교류를 막는 폐쇄주의의 근거도 되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이
제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신화가 아닌가 비판하고 싶습니다.

유태인이나 미국, 유럽은 제쳐둔다 해도 한국만 봐도 그렇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교육의 모범이 어디입니까? 동경대학의 전신도 무슨제국대학이고, 우리 서울대학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을 보십시요. 1970년대 동경대 본고사 문제 베껴내면서 뭔가
대단한 시험제도라도 있었던 마냥 그를 고집하는 서울대의 현재의 모습이 누구
탓이겠습니까?

일본어를 배우는 학과가 없다고 서울대가 식민잔재를 버렸겠습니까? 친일교수라고
비난한다고 동료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대단한 증거라도 있는 양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일본이 제공한 사료만 가지고 실증사학이 어쩌니
하면서 떠드는 모 경제학 교수를 보면 도대체 뭐가 저렇게 만들었나 탐구하고 비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대 인맥이 무서워서 못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도
실체를 모른체 그 제국주의 문화속에서 발전의 한계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발전할 방법이라면 그들도 기득권의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지요.

요는 이렇습니다. 근대화가 무엇이냐에 관한 의문에서 출발해 봅니다. 서양의 근대화는
민중이 종교 체제에 저항해서 만든 르네상스에 기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시민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조선왕조 중기의 의병운동과 말기의 의적이나, 동학
운동 등과 같이 민중이 구권력체제에 불편함을 느끼고 저항을 한 것이 근대화의 시작
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민중이 현명해 지는 과정에서 증기기관이나
전화 등의 발명 등도 있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을 근대화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
습니다.

그러나 일본 극우주의자가 주장하는 일본 식민주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완전한 역사 왜곡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도 그랬지만 친위쿠데타 이외의 어떠한
혁명도 없는 나라입니다. 정권도 겨우 한번 바꾸어 봤을 정도입니다(그것도 자민당
일탈파와 한 것이니 제대로 된 정권교체는 한번도 없었던 셈입니다). 근대화를 산업화
라거나 도로나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본이 식민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근대화의 씨앗인 동학혁명을 일본군이 조선왕조를 도와 짓밟았습니다. 즉,
한국은 근대화의 태동이 자생적으로 있었는데, 제국주의인 일본이 이를 짓밟아 버린
것입니다. 3.1운동도 그랬습니다. 따라서 근대화를 민중이 스스로 불편함에 저항해서
구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이라고 제대로 정의를 내리고 보면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의
근대화에 일말의 도움도 준것이 없습니다.

4.19에서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문화와 정권 한번 바꾸지 못하는 일본을 비교해
볼때 도대체 누가 더 민주화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미국화가 민주화라고 정의한다면
일본이 더 잘 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개념에서 볼 때, 정권 교체
한번 못한 나라가 더 민주주의가 되어 있다고 하는 미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카스라 테프트 밀약에서 처럼 서구 제국주의가 동양 제국주의를 인정해 준다는 측면
에선 십분 이해가 됩니다.

황국신민화 교육이 무엇입니까? 한글을 안 가르치고 일본어를 가르치고 하는 표면상의
문제점만 우리가 봐왔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이렇게 그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교육제도의 이식에 있었습니다.
즉, 제국의 신민으로 왕의 명령에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 제대로 비판할 수 없는 신민
으로 교육받아온 것입니다. 권위주의에 추종하고, 권위를 쫒아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
비이성적인 친일, 친미, 심지어는 주사파처럼 친북까지 하는 국민들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은 망한 것 처럼 보이고, 물러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제도인 일본식 주입식 교육과 그들이 지원해준 친일파 지식인 그룹(관료, 군인 등),
엘리트 그룹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속이고 자신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본 제국주의 교육의 장점을 그대로 답습해서 권위주의, 엘리트주의를 세습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재벌혼맥이나, 정치인 혼맥하면서 전두환에서 이명박에 이르는 6-7단계의
혼맥이라고 하면, 뭐 그럴려고 하면서 음모론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중국 근대
사의 왕비가문(손문, 장제스와 모택동으로 이어지는 미령, 경령 등), 그리고 조선왕조
쇠락기의 외척발호를 낳은 왕비가문(안동김씨, 풍양조씨)과 현대사의 왕비가문(홍진기,
김동조, 이후락, 김치열(이상 친일파), 노신영)을 비교해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
니다. 재벌이나 정치인, 언론사주 등으로 사위를 통해 가문을 번성시켜온 사람들입니다.
이들과 혼맥을 맺지 않으면 유전이나 통신 사업 등 황금알을 낳는 사업은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 군 장교 출신인 이후락의 세 사위는 국내 굴지의 3대 석유회사죠. 외국과
친해서 외무장관 등으로 인맥을 쌓은 김동조 가문의 사위로 조선일보 방진오, 코리안
헤럴드의 홍정욱, 정몽준 의원 등으로 이어지죠.

이런 틀 속에서 왕비가문은 커녕 평범한 가문에서 아내를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
으니 어느 언론이며 정치인이 호락호락 받아들였겠습니까? 이런 틀을 깨어나가는 지금이
마치 미국의 민권운동이 활발하던 1960년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레이건
대통령이 왜 광주항쟁을 짓밣은 전두환을 초청해서 반미감정을 촉발했냐고 하면서,
그나마 레이건을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왜곡합니다.

그러나, 1960년대 주지사였던 레이건은 반전시위대에게 발포를 명령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장본입니다. 미국 PBS홈페이지에 가면 1960년대를 그린 다큐멘터리가 있지요. 하긴
폭풍피해로 먹을 것이 없어 일시 잘못된 생각으로 절도를 하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발포
하는 현재의 미국도 그리 민주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시위대에 발표한 사람들끼리 야합을 잘한 것이지 결코 민주주의 신봉자 레이건이 독재
정권을 합리화 시켜 준것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죽어도 한국에서 방송
되지 못하겠죠. 미국에선 방송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참고로 전 반미주의자나 반일주의자는 아닙니다. 반제국주의자, 반공산주의자, 그리고
친민주주의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황국신민화 교육을 통해 한국 등 아시아에
심어놓은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즉, 작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가르쳐도 추상적으로 가르쳐서 가장 논리적인
글쓰기의 기본인 문단쓰기는 죽어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 사고 단위인 문단을 제대로
못쓰면 이미 논리적인 비판은 불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어 작문 가르치기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단어, 구, 문장 그리고 바로 전체 에세이로 뛰어 버립니다. 이렇게
교육 받은 아시아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논리적인 문장은 못씁니다. 유럽이나 남미 사람과
아시아인의 토플 점수가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못하는데 발음을 훈련해서 듣는다고 긴 강의식 듣기인 렉쳐가 들리겠습니까?)

유독 일본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 특히 영어논문을
제대로 못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조차도 제국주의 선조들의 이런
잘못을 모르니 여전히 영어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동경대 졸업자의 영어 실력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많은 유학생이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인터넷으로 교류를 해왔고,
일본 식민주의가 끝난지가 얼마인데 그동안은 왜 안밝혀졌나가 궁금해 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판하도록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그저 공부만 하고, 그러니까 권위주의에
기대어서 학교이름만 그럴듯한 데 들어와서, 몇년 살다보니 불편함 없이 영어를 사용
하게 되고, 자기도 잘 하는 것으로 알고(그러나 여전히 미국인 도움이 없으면 영어
논문은 못씁니다.) 지금껏 지내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폐쇄적인 엘리트주의, 그리고 빨리빨리 문화의 폐해입니다. 즉, 빨리
성장해야 하는데, 빨리 공부해야 하는데 언제 일반 국민들까지 다 공부시키고, 개인영세
기업까지 성장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적으로 재벌을 키워야 하고, 엘리트만
집중 지원하고(다른 국립대가 10%지원인데 반해 서울대만 예산의 20%를 지원하는 이유),
분배보다는 성장위주로 정부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것은 일본제국주의가 사라졌음에도 식민국가들이 영원이 일본의 그늘
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함정에 불과합니다. 천천히 해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일본의 넘어설 수 있는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많은 한국이 빨리빨리 하면서 기본을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고, 일본에서 받아와서 발전시키는 형태를 지속해 감으로써 영원히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극우학자가 한국은 죽어도 일본을 이길 수 없다라고
자신감있게(실은 뻔뻔하게) 얘기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천천히 해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요즘의 경제가 어려운데 어쩌고 하는 사람들
처럼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사람들을 속여서 결국 자기들 엘리트 그룹들 끼리만 기득권을
향유하겠다는 속셈입니다. 그것은 현대에는 엄청난 무역흑자라는 개념으로 일본에 식민
성과를 안겨주게 되는 것이구요. 다 떠나서 아무리 영어를 제2공용화해도 아시아는 자기
나라만 통하는 영어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한번 보십시요. 인도사람만 대단히 똑똑
해서 미국과 의사소통 가능한 영어를 하겠습니까? 오로지 일본의 식민지 국가가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국가였기에 유럽이나 미국과 교류가 많을 수 있었다는 점외에 어떤 장점도
없습니다. 이래도 일본이 아시아의 근대화를 위해 기여를 했다고 하겠습니까?

물론 일본의 주입식 교육제도에 힘입어 독재나 권위주의 지배를 공고히 해온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전 수상이나, 싱가포르의 고촉통 전 총리의 경우엔 일본 칭찬을 해도 되겠습
니다만, 아시아의 민중이 너무 불쌍합니다. 중국이나 북한도 공산주의를 채택해 일시
비판주의를 간 것은 다행이었으나 잘못된 이념인 공산주의를 채택(오로지 구체제에 대한
민중의 비판력을 높이는데에만 장점이 있죠)해서, 그 스스로 제국주의의 폐해인 권위주의
즉 자기들 체제에 대한 비판은 하지 못하도록 일본식 교육을 활용하는 잘못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제국주의와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같은 서양의 제국주의와 일본과 같은 동양의 제국주의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시험
요령을 가르치는 방법에서 명확히 나타납니다. 즉, 미국은 “시간이 걸리니” 절대 ‘번역’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시간이 걸리니” 절대 ‘비판'(독해 내용보고 그래
맞아. 사회가 이렇게 바껴야 해 하는 등)하지 말라고 합니다. 빨리빨리, 그리고 시험
잘봐서 엘리트 그룹에 편입하려면 제국주의에 반해서 번역하거나(미국) 비판(한국)하지
말라고 합니다. 인재등용 시스템인 각종 고시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제국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의 한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비판은 잘
하지만(기본 논리교육을 충실히 받으니까요), 번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작 왕 혹은
대통령의 지시는 제대로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선동의 진정한 의미를 번역,
해석하지 않고 비판해 보았자 무슨 비판이 되겠습니까? 거짓말로 증거를 속이면 주욱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 후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이 밝혀졌음에도 아직 다수
의 미국민은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다고 믿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증거를 속이기
위해 백악관 고위층이 법률을 어겨가며, 관련자의 부인이 CIA요원이었다고 폭로하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번역, 해석은 잘 하지만(각자 주장이 만발해야 옳바른 정론도
묻혀지거든요.), 비판을 하지 않기 때문에(기본 논리교육을 절대로 안가르칩니다), 권위
주의를 추종하고, 일단 확립된 과거의 권위주의는 절대로 비판을 하지 못합니다. 박정희
향수나 전두환 향수, 민주적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가 지역주의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묘하게도 이 둘을 섞어서 교류를 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판만 잘하는 미국
인은 선동자의 진의를 해석할 수 있는 번역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번역만 잘하는 한국인
에겐 잘못된 권위가의 논리오류인 선동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를 강조해서 가르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여기에서 서양의 세계화로 이름붙여진, 신자유주의로 이름붙여진
서구 제국주의의 한계, 그리고 권위주의 혹은 신진보로 불리우는 아시아 공산권의 한계,
그리고 아시아 제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평화, 세계경제의 한단계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휘트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간디, 타고르, 손문 등등 위인들은 전부 동시대의
세계인들과 교류했기 때문에 세계평화를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휘트먼이 힌디즘을
연구한 것이나, 인간적 기독교를 주창하는 톨스토이는 중국의 우인, 그리고 인도의
불교도 등과 교류했죠. 우리 위인전 처럼 위인의 교류는 빠지고 위인 한사람만 혼자
잘나서 위대한 마냥 글을 써 놓은 전기도 드물죠. 아마도 폐쇄적인 엘리트주의의 산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시대나 UN식의 자기 말과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소극적 교류가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상대방의 언어를 배워서 상대방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배우는 적극적 교류,
대화만이 세계평화의 진정한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논리적인
미국과 비논리적인 아시아 공산권 문화가 만나서 전쟁만이 살길이라고 덤벼드는 신자유
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서, 논리의 장점과 비논리의 장점(사랑, 정)을 결합시켜 민중들이
세계평화를 이끌어 내는 전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형 전투 비행기가 아니라 현명한
민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그럼요. 영어로 글을 쓰면서 기본적인 문법을 틀리면 미국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는 문장이나 말이 되거든요. 물론 은행이나 마켓에서는 늘상 하는 말이니까 문법이나 발음이 좀 틀려도 대충 알아 들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토론을 할 정도의 사이라면 문법이 틀리면 의사소통이 어렵지요.

문제는 문장력과 함께 문법이 길러져야 하는데, 예문조차 공부하지 않고, 한글로된 문법 내용이나 불규칙 등을 외우고만 있어서는 콩글리쉬 밖에 나오지 않게 되고, 미국사람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문장을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빨리빨리 주의에서 한글로 생각한 것을 영어로 단어 바꾸고, 문법에 맞추어 어순 바꾸고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생각해서 문법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외국 원서를 번역하지 않고, 원서로 공부해야 하는 대학생을 위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그런데 원서내용을 보면서 문법 틀린 것을 찾을 이유는 없으므로 결국 독해용 문법은 독해를 할 때 문장을 어디에서 의미구로 끊을 것이냐 정도가 중요하겠지요. 어순이 다른 이상, 한글을 영어 어순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결국 문법만 배우고, 단어만 외워서는 생각하면서 하는 영어, 그러니까 미국인은 인내가 있어야만 들어주는 영어를 하게 됩니다. 물론 보통 미국 사람은 그런 인내가 없습니다.

명문대학의 교수일 수록 질문 조차 못하는 학생의견은 아예 무시하죠. 우리가 물건을 살 때에는 그 사람들이 들어 주겠지만, 수출국인 한국이 물건을 팔기 위해선 그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결국 느린 것 같지만, 단어를 외우기 보단, 의미구(숙어, 관용어)를, 숙어를 외우기 보단, 문장을 외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미국인의 억양으로 해당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되고, 600-700정도의 문장을 미국 억양 그대로 암기하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나 수다떨기는 가능합니다.

쓰기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문장단위로 실력을 늘려가야 합니다. 특정 표현이나 잔표현들은 외워서는 여전히 콩글리쉬가 되고, 미국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문이 되어 버립니다. 논리적인 한문단 쓰기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논리란 우리가 수학시간에 배우는 충분조건/필요조건/필요충분조건 등의 기본적인 틀 위에서 수학처럼 명쾌하게 정답이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글쓰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설득력 있는 논거는 미국인이 생각할 때에는 전부 기껏해야 관련성 있는 얘기 일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논거는 여론조사라거나 신문 등을 인용하는 수준으로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권위 혹은 공론에 호소하는 논리오류이기 때문에 0점인 영어 글쓰기 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논거가 주어지고, 그를 보완하는 간접증거로서 여론조사 결과나 연구결과의 인용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영어의 충분/필요 조건 등을 알지 못하고,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주장을 그럴 듯 하게 보여주는 강화/ 혹은 반론에 대한 약화 정도의 글쓰기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각종 사설은 99% 논리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자기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가 문제인데, 이것은 자기 주장을 의미구 단위로 나우어서 정확히 패러프레이즈가 되어야만 합니다. 삼단논법의 예를 보면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에서 공통 분모인 소크라테스로 묶어 보면, 인간이 죽는다는 똑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에 거추장스런 한 단어라도 더 들어가면 정확한 논거는 될 수 없고, 겨우 결론을 그럴듯 하게 보일 뿐인 논거가 됩니다.

문단의 추론과정인 연역법, 귀납법도 일본식 해석이라 도무지 뭔지 혼동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영어로 놓고 보면 귀납법은 더하기(Induction), 연역법은 빼기(Deduction)이 됩니다. 즉, 논거의 단어를 더해서 결론 문장이 되는 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문단쓰기인 귀납법(단어(논거) 더하기)입니다. 반면에 미국인이 본문의 문단에서 사용하기 좋아하는 결론 문장을 먼저 쓰고, 아래에서 여기에 사용된 단어들을 빼내어서 여러 문장의 논거를 만드는 것이 연역법(단어(논거) 빼기)입니다.

일본식 영어 해석이랑 air(공기)+port(항구) 공항, auto(자동)mobile(차) 이렇게 엉터리 직역입니다. 반면에 좀더 정확한 중국식 해석은 air(plane의 기)+port(항구) 기항, auto(기동력이 있는 기계)+mobile(차) 기차 이렇게 실질적 의미를 가지고 해석합니다. 영어가 표의 혹은 가차문자가 아닌데 쉽게 한다고 일본식 영어단어를 가지고 쓰는 것이 한국입니다.

물론 원인은 값싸게 영어사전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일본인이 번역해 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고령 출판인이 익숙한 일본어를 한글로 옮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률용어의 75% 이상이 이렇게 일본 법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한글 코드와 관련된 KS5601도 일본 코드 번역 체계를 가져오다 보니 부속서라는 말 한글사전에도 없는 일본식 한자어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일본식 법률 용어입니다. 법제처 장관도 10에 2밖에 한자어의 음과 뜻을 모르는 법률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 법조계의 현실입니다.

일본이 사법개혁하면 우리도 한다는 주의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제도변화는 낯설고 부작용이 많다고 하면서 저항하다가도, 일본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100%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로스쿨 도입도 일본이 2004년에 도입하니까 우리도 도입하는 것이고, 일본이 배심제로 가니깐 우리도 그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로스쿨과 배심제의 역사가 오랜 미국의 제도는 부작용이 많다고 하면서 거부감을 가지는 법조인들이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찬성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요?


맞아요. 빨간영어책, 파란기본영어, 파란종합영어, 청록대학토플 등등 우리나라 영어발음 교육(한글 발음기호), 예문없이 한글로 된 설명만 외워서 문제를 풀이하는 우리나라의 학생들이 토플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되는 이유입니다.

토플학원에 가서 토플문법 수업 한시간만 들어보면 얼마나 엉터리로 문법을 배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토플도 내년 5월이면 문법문제가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물론 독해에 통합되어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문법이란 독해문제 보기의 함정으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일테면 본문에선 단수인 단어가 그럴듯한 긴 보기중에 복수인 단어로 숨어 있습니다. 아니면, 현재진행형인 동사가 해석상 가장 그럴듯한 보기문장 중에서 연도표시가 진행형이 아니고 과거형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해석으로 독해를 풀면 점수 안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즉, 실전에 도움되는 아주 기본적인 문법사항만이 물어집니다. 왜냐하면 실제 영어기사를 읽을 때 틀린 문법을 발견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나 영어를 틀리지 미국인은 틀릴 이유가 없거든요. 다만, 단수나 복수 등으로 독해문장중의 지명대명사를 잘못 해석해 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이것만 묻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앞으로의 영어 교육은 빨리빨리 식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문장을 하나씩 외워하고 외국인의 억양과 발음 그대로 따라할 수 있도록 교육해 가는 것으로 바귀어야 합니다. 그러면 문법이 틀린 문장을 쓰는 잘못은 없어집니다. 물론 이상한 억양의 영어를 얘기할 일도 없습니다. 콩글리쉬도 없어지지요.

유럽애들은 방학때 잠깐 다녀가면 잘하는 영어를 아시아만 왜 못할까요? 한국과 일본은 어순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중국애들은 왜그럴까요? 영어억양과 발음보다 풍부한 사성과 7음을 가진 중국애들은 왜 영어를 못할까요? 바로 실제 사용되는 영어가 아닌 자신들의 말을 번역해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문법교육이 앞서가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콩글리쉬의 함정때문입니다.

또한 영어 논리 역시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쉬운데 우리가 역사상 도무지 배워본 적이 없어서 어렵다고 생각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간단하게는 수학시간에 배운 충분조건/필요조건/필요충분조건입니다. 수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기본 논리학입니다. 영어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한글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교 논리학교재나 수리논리학 교재도 미국 영어논리학 책을 번역한 것이니깐 더 말이 필요없지요. 다만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번역하거나, 일본에서 오번역한 것을 한글로 다시 번역하면서 잘못된 것도 많아서 실생활에는 전혀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연역법이나, 귀납법 모두 우리가 배운 글쓰기랑 완전히 틀립니다.

우리 한국식으로 글쓰기를 한 다음에 그를 단순히 영어로 옮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미국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글이 되어버리니까요. 미국 국무부 한글통역가 라고 해도 외교분쟁을 일으킬 만큼 큰 오번역을 하는 것을 봐도 알 수가 있지요. 교포가 주로 하는데,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의 실생활이나 분위기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오번역이 나옵니다.

암튼 영어든 뭐든 교육체계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창의적인 인재의 육성은 어렵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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