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일 우리가 그렇게 후회할 어제! 행복을 만들자!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어학원에서 같이 수업듣는 쿠웨이트에서 온 압둘라라는 친구한테 한글을
가르쳐 주면서 자음과 모음을 알려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자음 하나가 생각이
안나는 거에요. 뭐가 빠졌는지 아무리 기억할려고 해도 생각이 안나는 거에요. 미국에서
3년넘게 살았다고 티내는 것도 아니고 참 사람의 기억력이란 믿을게 못되나 봐요.

하긴 한글자모를 배운게 초등학교 갓 입학하기 전에 9살이나 많은 큰누나한테서 였으니까
그럴만도 하죠 뭐. 군대를 늦게 가서 2002년에 30살에 전역을 했어요. 그때 후배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승만 대통령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 거에요. 그 왜 초대 대통령
이름이 뭐였지?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죠. 2년 2개월 동안 군사법원에서 열심히 남의
이름 한자 정리하던 제가 제 이름 한자를 잊어버린 것 보면 참 한심하죠. 한자를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 고향이 안동이라 나름 배울만큼 배웠고, 대학때도 법률용어를 한자로
쓰면서 익혔는데도 제 이름을 잊어먹은 거에요.

물론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제 이름 한자로 써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역사속의 인물
을 떠올릴 기회도 없었으니까 그랬겠지만 말이죠.

어학원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어린 친구들이 많으니까 우연히 연애얘기가
나왔어요. 그런김에 주변에서 본 성격에 따른 커플들의 얘길 생각해 보게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나아가서 사람들끼리 서로 화를 풀고 정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죠.

O형은 가끔 속에 가진 따뜻한 마음과 다른 차가운 말을 할 때도 있데요. 그렇지만 솔직히
A형이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혈액형은 B형이래요. 소심하고 고집센 A형 입장에선 원칙과
융통성이 없기로 유명하니까 금방 분위기가 변하는 B형을 이해하기가 힘든 거지요 뭐.
특히 소심하니까 B형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속으로 금방 죄책감 느끼고 겉으로는 화가 난
척 하면서 죄책감을 면하려고 하지요. 큰누나 부부가 A형과 B형의 만남이라서… A형 유형
과 B형 유형을 대표적으로 생각해 봤어요.

왜 주홍글씨라는 소설을 보면, 불륜을 범한 여자는 갖은 비난을 받으면서 사는데, 정작
그 불륜의 상대방인 남자 주인공 목사는 갖은 존경을 다 받으면서 더 심하게 불륜을 비난
하잖아요. 자기 죄책감을 잊기 위해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하는 괴팍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마치 학생들이 100점 컴플랙스, 좋은 자식 컴플랙스에 사로 잡혀서 뭔가 잘못을 지적당하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양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 처럼 말이죠. 그냥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고치면 되는 것인데 말이죠.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적받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전부 학창시절의 성적 컴플랙스, 모범생 컴플랙스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지적 받아 고치면 될 뿐이잖아요. 행동이 잘못된 것이지 그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닌데, 우린 흔히 이걸 혼동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비판을 받으면
마치 자기의 자존심과 모든 인격이 모독당하는 것 처럼 느끼고 그 반대작용으로 상대방
에게 복수하겠다는 심정으로 서로 감정적으로 싸우게 되잖아요.

학계도 그렇고, 학회의 세미나를 가 봐도 이렇게 싸우는 학자들이 참 많아요. 그냥 모르고
있었으면 알게 되면 그 뿐인 것이지 무식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감정싸움을 하는 정치
인들을 봐도 그렇구요. 유식하고 무식한게 아니라 그냥 먼저 배워서 아는 것이고, 아직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것 뿐이잖아요. 모르면 알려주고 상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먼저
배운 사람이 할 일이지 상대를 무시하고 잘난체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해요.

하긴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저 역시도 A형인지라 지적을 받으면 웬지 모르게 하루종일
울적해요. 뭔가 죄를 지은 것 처럼 말이죠. 인간이 완벽할 수가 없는 것인데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배워서 알면 되고, 지적을 받고 고칠 줄 알면 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몸에 밴 성적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괴롭히거든요.

이럴때 제가 하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자기 최면이에요. 넌 할 수 있어. 재원이 넌 잘 할수
있어요. 잘 하고 있는거야 라고 되뇌이는 거지요. 머리속의 부정적인 생각도 이렇게 말로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으면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거든요.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나 할까요. 남이 나를 기분나쁘게 해도 내가 나를 기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B형이 만일 A형의 이런 소심함을 알고 있다면 막 성질을 부리려고 할 때에도, 혹은 이렇게
결정했다가 저렇게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사전에 “당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야.
당신이 죄책감 느끼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야. 단지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이렇게
불평하는 거야.” 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요.

또 반대로 A형은 B형이 화를 내고 얼굴도 보려 하지 않을 때에 기다려 줄줄 알고, 그리고
“나도 당신이 화가 난 것을 알겠지만, 나는 지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정말 반성하고
있는데 웬지 나도 모르게 죄책감을 회피하고 싶어서 화가 나. 당신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데 웬지 모르게 당신에게 화를 내고 싶어져. 지금은
우리 서로 흥분해서 얘기가 잘 안될 것 같으니까 조금만 서로 감정을 다독여 봤으면
좋겠어.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니까 이렇게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긴 싫어.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다시 얘기를 해 봤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더 좋겠구요.

A형은 B형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왜 화가 나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반대로 B형도
A형이 얼마나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고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상상할 수가 없으
니까 서로의 상상의 한계속에서 상대방을 비난만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뭐 이건  굳이 혈액형별 성격만이 아니라, 남녀간이나 부모자식간에, 그리고 수많은
대인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해요. 모두 각자의 경험의 한계속에서,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 속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한 일은 별 것 아니고, 그가 나에게
한 일은 엄청나게 큰 잘못이라는 착각들 속에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말 서로
상대방이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그리고 얼마나 실망을 하게 될지 가슴에 들어가서
알 수 있다면 아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행동이나 말들을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어느 누구도,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이건 알기가 힘들지요. 모두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니까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응원을 하니까 남자나 여자나
모두 자기 잘못은 과소평가하고, 상대방의 잘못은 과대평가하게 되지요. 솔직히 남녀관
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어느 한쪽이 기다려
주면 언젠가 죽을때 쯤 되면 바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겠지요. 결국 누가
더 양보를 더 많이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시간약속 문제도 여러가지 관점이 있겠지요. 기다리는 사람은 걱정이 되고, 상대방이
시간약속에 맞춰 오지 않으면 무슨 사고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너무나 되는데 상대방은
아무런 사과도 없으니까 화가 나는 것이구요. 반대로 상대방은 시간 약속이 늦어서
스스로 이미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내색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냥 모른척 지나치고 싶은 것이겠구요. 물론 게중엔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잘못된 사람도 있겠지만요.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그런게 있데요. 이미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혼자서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때는 너무 심하게 야단을 치지 말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아이가
실수로 그랬거나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모르고 그랬지만 결과를 보고 나서는 스스로
이미 잘못을 깨닫고 괴로워 한다면 다음부터 그러지 않도록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O형의 입장에선 속으론 미안하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한 것일 수도
있고, 기다린 사람이 화를 내면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반대로 기다린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기도 하겠구요. 사람은 흔히 자신에게 화를 낼 때에도 그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고 착각하게 된데요. 자신을 합리화하는 본능이
작용한 탓이겠지요. 참 모순되지만 심리적으로 그런 면이 있데요.

그래서 요즘에는 사람이 가진 다중지능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여 소통을 잘하는 지능이 따로 있다고 해요. 소위 EQ 라고 하는것에
덧붙여서 말이지요. 자신이 화가 나는데 도대체 그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인지
자신에게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일단 그럴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서 하나하나 설명하는게 제일 좋데요. 화가 나니까 나도 상대방의 감정을
긁어줘야지 하면서 그냥 화풀이를 하기보단, 내가 이러 저러해서 화가 났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 서로 화해를 하기 위해 더욱 좋데요.

물론 문제는 대부분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사소한 것이거나 차마 자신의 말로 하기
에는 부끄러운 이유일 때가 많아서 자존심을 꺽지 않는 이상 솔직하게 말하기가 힘들
지요. 예를 들어서 드라마를 보다가 남편이 채널을 틀었는데 마침 아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 봐요.

아내는 자존심이 상하니까, 혹은 남편이 질투할 까봐 그 배우가 보고 싶어서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겠지요. 그냥 당신은 왜 TV를 “볼 때마다” 채널을
그렇게 돌리느냐라며 일반화된 불평을 말하겠지요. 그럼, 남편은 “내가 언제 매번
그랬느냐”라며 변명모드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인격이 모독받는다고 과장된 상처를
받게 되죠. 실은 그냥 어떤 질책이라도 자동적으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반사작용으로 크게 화를 내는 것 뿐이거든요. 큰 잘못을 지적받지 않아도 똑같은 정도의
죄책감과 화를 내게 되는 이유이겠지요.

그러니까 평소에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이렇게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이 부끄러운 순간이 적게 될 테니까요. 사실 사람들은 대게 자기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많잖아요. 그냥 짜증이 나는 것이고,
그래서 그냥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건 이유가 없다기 보단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상대방의 감정도 잘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구요. 겉으로 얼굴에 나타난 상대방의 화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아는 것이 진정한 EQ일 텐데 말이죠.

예를 들어서 아내가 친정 어머님께 섭섭해 한다고 남편이 막 거들어서 친정 어머님을
나쁘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내는 웬지 모르게 화가 나겠지요. 이유는 모를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도대체 제대로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 이 남자가 왜 우리 엄마를 나쁘게
말하는 거지하는 감정도 있겠구요.

사람의 감정이란 복합적인 것이라서 잘 파악하기가  힘든 것이잖아요. 때론 남성
호르몬이나 여성 호르몬의 작용으로 기분이 나쁠수도 있는 것이구요. 때로는 내편을
들어주니까 기분이 좋기도 하고, 같은 일도 내가 기분이 나쁠 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게 제일 좋아요.
안 그러면 상대방은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다들 자기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겠어요. 친한 친구들은 이럴때 다 알아주던데 그래 봐야
정작 그 일에 부딛힌 상대방은 전혀 알 수가 없는 때도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소개팅가서 여성이 말을 많이 하면 남자들은 여성이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데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남성을 만나면 감정이 들떠서
말을 잘 못하게 된다고 믿거든요. 그러니까 호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그냥 친구처럼
말을 편하게 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건 본능적인 반응이니까
굳이 숨길 필요 없잖아요. 그냥 그 여성이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 뿐이죠 뭐.
첫눈에 반한다는 게 어디 쉽겠어요.

남자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해서 여자들이 지루한 것이나, 여자들이 뜨개질 얘기
해서 남자들이 지루한 것이나 서로 관심이 없는 분야라서 그렇지요. 남자들이 인형을
좋아하지 않고, 여자아이들이 로봇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잖아요.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없으면 만들려고 노력을 해 보고 그러는 것이 제일 좋지요. 둘다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없고, 자기가 하던 것만 계속할려고 한다면계속 재미없겠지만 말이죠.

남자야 군대시절 얘기가 재미있는 것이고, 여자들은 자신의 취미생활인 뜨개질이나
인형만들기를 얘기해야 재미있는 것인데 그건 동성들 사이에서나 해야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얘길 해서야 되겠어요? 그건 서로 재미없어 하는게 당연한 것이지요 뭐.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서로 공통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이성이 마음에
드니까 관심을 새로 갖게 되는 것이지요 뭐.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에다가도
절을 한다잖아요.

미리 앞질러 고민해도 얘기하기 전엔 서로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뭐. 지금 행복하고
지금 열심히 살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좋은 것이잖아요.

그런말도 있잖아요 왜. 우리가 사는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어제의 내일이었다라는 생각 말이죠.

제 생각을 덧붙이면, 우리의 오늘은 미래에 사람들이 후회할 수도 있고, 보람이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과거라는 것이죠. 항상 지금 미래의 후회를 만들지 말고,
미래의 행복을 만들어 가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에요.

더 나아가서 현재의 행복을 즐기고, 현재가 괴롭다면 빨리 잊어버리고 자기 최면을
걸어서라도 괴로움을 극복한 후의 미래의 즐거움을 앞당겨 버리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있어요.

미래를 고민하기 보다 행동하고, 후회할 일이 있어도 일단 행동하고 나서야 후회할지
보람을 느낄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하루하루 하나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다
보면 스트레스도 덜 받지않을까 싶어요. 기대치를 낮추고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성급하거나 빨리 성취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보단,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삶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느리더라도 모두가 한걸음씩 행복에 가까워지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최재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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