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처세술 전문가가 아니라 따뜻한 합리적 대중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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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생방송 금요토론 1/18/2008
3불정책은 사라지는가? 방청후기

관련 홈페이지 주소:
http://www.ebs.co.kr/Contents/VODList1.asp?category=A02B06C02D01E00&progcd=0005612#none

안녕하세요!
지난 1월 18일날 방송된 EBS 생방송 금요토론 “3불 정책은 사라지는가?”를 인터넷 다시보기를
통해 방청을 했습니다. 조기숙 교수님을 비롯해서 학부모, 고교 교사, 그리고 교육학 전공
교수님 한분이 참여하여 한시간 가량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교육의 중요한 주체인 학생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교수님을 제외한 다른 세명의 패널은 그 주장이 논리적이진 못했지만 솔직한 그들의 속내를
잘 유추해 볼 수 있는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부모 대표는 사회자의 얘기처럼 자기
자녀의 이익을 기준으로 얘기를 하고, 고교 선생님 역시 자신의 학교위치를 고려해서 고교
등급제와 관련된 보완점을 말씀 하셨고, 마지막으로 서울대에 재직하고 있는 교육학 전공
교수님은 자신이 공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냥 현재의 교수의 위치에서 그들만의 상식과
같은 주장을 계속하셨습니다.

[ 이기적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갖춘 주장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특징상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단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기적인 이해만을 이유로 한 주장인 것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실험결과를 가지고 있는 주장
인지 먼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합리적 혹은 논리적인 토론
의 전제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학적인 실험결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인가?에 관한 검증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설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해도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강자독식의
주장이라면 보완을 거쳐야만 합니다. 교수님의 주장인 “끊임없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또한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긴장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 그들 스스로 국제경쟁에 있어
서의 패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문제점 또한 있습니다. 결국 약자이든 거의 모든 이익을 독식
하는 강자이든 세계경쟁에 있어서는 패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일본의 주장을 절대진리인양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의 관념속에서 살면서 미국제도를 받아들인 것이 왜곡을 일으킨 원인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정책은 그것이 옳던 그르던 간에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하는 수많은 억지
주장들이 잘 구성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일본이나 중국처럼 나름대로 패권을 주장
하고 자만감에 차 있는 국가의 문화와 정책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처럼
조선시대까지는 중국의 문화를,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의 문화를, 그리고 8.15독립이후
일본문화를 주로 하고, 미국의 문화를 종으로 하는 서양문화의 수입 등을 거친 국가는 이런
수입문화의 왜곡속에서 진실을 바로 보기가 참으로 힘이 들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엔 일본 문화에서 우호적인 동맹국 독일이나, 귀족주의를 갖춘 프랑스의
엘리트주의를 따라 유럽으로 유학을 한 386세대에 의해 일본화된 유럽문화가 다시 수입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90년대 중반 이후엔 미국 유학세대와 세계화 시대의 산물로 유럽
배낭 여행을 통해 수입된 문화가 다시 진실을 왜곡하게 됩니다.

이런 문화수입 과정에서 항상 우리 민족의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 순수한글 사용, 외래어
배격, 심지어는 한자어의 사용중시 등으로 중국문화까지를 한국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 다시 일본문화도 우수한 것은 우리의 것으로 봐야한다는 일본식 주입교육의 고수
혹은 일본식 대학별 고시제도 혹은 고교 등급제의 주장 등이 난무합니다.

유럽에서 교육받은 386세대는 다시 유럽이 우수하다며,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식 논술고사
를 주장하고, 혹은 대학의 평준화를 주장하거나 유럽이 무조건 옳으므로 유럽이 싫어하는
미국문화나 교육제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미적 정서가 우리것을 중시하는 문화와
결합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어느 것이 유럽의 문화나 교육현장의 진실이며, 미국 문화나 교육현장의 진실
인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각자의 단편적인 주장만이 난무하게 됩니다. 아무도 진실은 알려고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거나 혹은 자기의 지인들에게 들은 “카더라” 지식들이 상식이 되고
그것을 의심해 보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럽이든 미국이든 현지의 교육학 전문가에게 각자의 제도에 관한 논문을 쓰게하고
그를 국내에 소개하면 될 것을, 각지에서 공부했던 우리나라 교수에게 용역을 주어 교육
제도를 연구하게 했습니다. 결국 유럽이나 미국의 현실이 아니라 용역을 담당하는 교수가
가진 선입견 혹은 연구방법의 한계에 의해 왜곡된 정보가 권위를 가진 연구보고서인양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우리는 일본의 문화속에서 살고 있는가? 가 궁금해 집니다. 정답은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이 일본에서 견학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수입해 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국어 문법이나 한국문학의 평론까지 모조리 일본에서 수입된 영어나 유럽어
의 문법 혹은 평론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초반의 구조주의 문법이론이 일본에서 일본화를 하고, 다시 한국에
받아들여져 순수한글 고수와 문법변화 불변이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문학의 표현
방법인 “직유법, 은유법, 의인화, 속담등을 사용한 관용법” 등등도 모두 서양의 용어를
그대로 일본어식 한자화하고, 이를 한글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면 더욱 문제의 심각
성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문화 종속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대학사회는 오직 일본 대학들의 대학별
고사, 고교 등급제 등과 같은 잘못된 문화 그리고 학벌제도에 따른 취업차별, 마지막으로
관료를 사회의 최상급 인재로 잘못된 권위를 부여하는 고시제도 등을 따라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교수님의 저서에 따르면 YS정부때 5.31정책은  미국 교육제도의 도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주입식 교육이나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 그리고 권위적 관료
제도와 관료채용제도인 고시제도 등과 같은 일본문화의 산물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두개의 다른 문화가 충돌하면서 본래 미국 교육제도가 가진 장점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점에서 저는 교수님이 미국제도가 과도기
속에서 문제를 겪고 있지만 그 본래 제도의 장점을 취해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신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고 약자를 배려하는 주장을 통해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야한다.]
[사회 각 주체가 이기적인 주장을 하고, 그것을 합의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사회의 구성원 각자의 다양한 이기주의를 배제할 방법이 없다
는 데에 있습니다. 다수결 결정과 모두가 1표를 가지는 보통선거원칙은 집단의 의견을
하나로 결정하는데에는 효율적이지만, 그것이 인기투표가 아닌 이상 무엇이 옳바른
정책인지 결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치 인기투표 1위인 가수가 가창
력이 1위가 아니고, 인기 1위의 배우가 연기력 1위일 수는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의
미디어 정치는 인기 1위의 정치인을 뽑는 대중선거의 최악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다수가 옳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1+1″을 3이라고 하는 주장을 정답으로 채택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회의 구성원이 어떠한 주장을 할 때 그것이 이기적인 이해관계
를 가진 주장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합리적인 주장인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무리 박사이고 공부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과학적
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 사실과 반대의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신뢰성이
없는 주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현명해지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만 옳고 그름의 판단
을 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거울이 되어 준다면
좀더 편하게 갈 수 있겠지만 언론이 이미 기득권이 되고, 제4의 권력(입법, 사법, 행정권
의 삼권에 더해 기득권이 되어버린 언론)이되어 있는 이상 합리적이고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가진 국민의 양성 이외에 인기있는 독재자, 인기있는 노래 못하는 가수, 그리고
인기는 있지만 연기력 하나 없는 배우의 출현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어른이 되어서 다 잊어버릴 단편
적인 교과서상의 지식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타인 특히 약자를 배려하는
공공성이라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주권자인 국민이 잘못된 인기투표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면 그 국민의 다수
에 맞춰서 실용을 주장하며 왔다갔다하는 인기성 발언이나 정책을 펼 것이 아니라, 그
주권자에 간언하고 무엇이 옳은지, 왜 옳은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알려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로 유배를 보내었다고, 간신처럼 다시
국민에게 아부하는 방향으로 주장을 바꾸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합리주의와 이기주의도 구별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간언해야 한다]
[이기주의를 명분으로 자기합리화하는 것이 합리주의가 아니다]
(실용주의와 정치인 개인의 자기생각, 멋대로주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과학적인 실험을 거쳐서 그 결과를 정책으로 삼아 실천하는 실용주의가 아시아에서는
권위주의를 보호하는 이상한 이론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원조는 호치민의
이상한 공산주의 옹호에서 출발합니다. 급진좌파의 주장인 공산주의와 수구적인 보수
주의인 민족주의는 이론적으로 같이 자리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호치민이
자기의 공산주의와 변화를 합리화 하기 위해 적당히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버무려서
자기만의 주장을 하면서 그것이 실용주의라고 칭합니다.

결국 그 주장 자체가 논리적인 일체성이 없기 때문에 모순인데, 그 이념만을 추종하면
그 어떤 과학적인 질문도 모순된 자기 이념에 따라 방어만 할 뿐 합리적인 주장을 할수가
없습니다.  최근까지 각종 정치인이 주장하는 실용주의는 모두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 오로지 그냥 정치인 개인의 생각 혹은 그 주변의 측근들의 생각이 주장으로 제기될
뿐입니다. 다만, 이념적인 논쟁이나 주장에 관한 모순점 등의 논쟁읠 회피하기 위한 목적
으로 임기응변적이며, 이기적일 뿐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답변을 잘못된 합리화의 근거로
제시하기 위해 자기들 멋대로 “실용주의”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즈음의 “실용주의”란 미디어 정치의 잘못된 면만을 가져와 정치선전 구호방법
인 “이름 부르기(네임 콜링)”를 화용한 국민 속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각종의 그럴
듯한 주장이나 이론을 멋대로 끌어다가 자기의 주장은 좋은 것이란 과장광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현명하게 “실용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하거나 진실을 파악
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언론의 평가나 주변의 사람들의 얘기만을 들어 사회를
바라 본다면 계속해서 속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국민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어렵다는 주장이 있겠습니다. 또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편법으로 보수에 반대하는 진영도 미디어 정치를 악용하고 국민들이 이기주의에 맞춰
아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국회에서 단상을 점거하거나 자기 의견과 100%일치
하는 정치인만을 추종해서라도 옳은 진보의 주장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원자력 발전의 폐기물이 처리하기에 힘이 들기 때문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먼
바다에 갖다 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직접 부딛
혀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밖에 없다면 잘 보관해서 기다려 주는 방법을 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시간을 들이고 힘이 들더라도 국민 한명 한명을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부터 민주
주의의 현명한 구성원으로 육성해 가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특정 이념이나 지식을
갖추게 하는 전교조의 교육방식이나 전경련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교과서 등을 통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체육활동을 통한 단체협력의 정신과 사회봉사 활동을 통한 따뜻한 가슴을 가지
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교육을 통해서 국가의 예산을 투자하지 않아도 국민 스스로 미술전시회와
음악공연, 그리고 문화소비(영화, 소설 등 문학 등등)를 하여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에 관한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인가 살펴봅니다. 20대의 한 젊은 학생이 우리는
IMF이후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본 세대이기 때문에 취업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386세대와는 달리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합리주의 세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기주의를 합리주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 세대의 단편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주의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에서는 386세대에 인기를 얻고 있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오늘의 교육현실
에서 강남의 아주머니들이 자녀들을 사교육에 맡기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한겨레 신문 컬럼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풀어보면 사교육을 시켜 명문대학을 보내
야만, 취직도 잘하고 결혼도 잘 할 것이기 때문에 강남 아주머니 들이 자신들이 이익
에 맡는 선택을 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사회의 지식인이란
사람 조차 “합리주의”에 대한 옳바른 정의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

합리주의, 혹은 논리적 주장이란 바로 진실인 원인과 진실인 결과를 연결시켜 주장
하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된 원인, 거짓된 결과나, 각자가 진실이더라도
잘못된 연결을 하여 인과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은 비논리적인 주장이며,
비합리적인 태도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완벽한 박사, 성인, 선지자 할아버지든, 여덟살 짜리 아이든 간에 어떤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왜 그 주장이 옳다고 하는 것인지를 살폅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 사람의 주장이 그럴듯하고, 본능적인 나의 생각과
일치하면 받아들이는 것은 비합리적인 이해에 해당합니다. 소위 인상평가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주장자가 근거를 되거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얘길 하면 그것으로
검증을 멈출것이 아니라 다시 그 근거는 왜 옳은지, 그 이유는 타당한지 다시 끊임
없는 질문을 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상식이니까, 혹은 유명한 사람이 그렇
게 말했으니까 등으로 검증을 멈추어서도 안됩니다. 끊임없이 왜 옳은가?라고 질문
을 해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구성원의 판단방식이 될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고, 지금 제도가 문제가 있으니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야 하고, 내가
하는 것은 무조건 과거와는 다르니 괜찮다는 자기 멋대로 주장은 합리적인 토론을
막는 처세술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일본으로 부터 각종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각종 서양문화에 관한 일본식 한자어휘의 수입과 과거용어의 고집을 통한 기득권
학자의 권위 지키기가 한 예입니다. 또한 서양 책이나 영화, 미술 등의 각종 문화의
국내 소개 조차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을 다시 한국에 소개하는 순서를 거치고 있습
니다. 각종 번역에서 조차 일본번역문을 참고해서 원문이 아닌 일본식 왜곡을 그대
로 수입해 전달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영어나 유럽어 등 외국어를 읽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비교적 번역이 쉽고 배우기 쉬운
일본어 버전을 통해 서양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일본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서양 문화를 그대로 한국에 소개하다 보니, 일본식 영어발음이 그대로 한국에
들어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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