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님의 영어 연설과 인터뷰 방법을 배우신 경험담을 읽고서

1. 박원순 시장님의 페북말씀중…

Won Soon Park
외국의 회의에 참가할 때는 늘 영어의 부족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좀 영어공부를 해야지 하곤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귀국하면 바쁜 일정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어느 교수님과 통화하면서 영어연설이나 영어 인터뷰의 요령 등에 대해 공부해 보자는 이야기가 되어 서울의 대학이나 로스쿨 등에서 바로 영어연설 등에 대해 강의하는 외국인교수들을 모셔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뭐든지 억지로 이렇게 해야 일이 되는 법이지요

제가 맨 먼저 배운 것은 PREP 원칙이라는 것인데요. 먼저 논점을 딱 정리해서 두괄식으로 포인트를 정리한 다음 그 이유를 말하고 이어서 증거가 되는 사례를 간단히 말한 다음 다시 그 포인트를 강조하면서 결론을 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말하는 요령이 없어 주저리주저리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 분들이 참 전문가다 싶은 게 제가 이미 영어로 인터뷰한 것들을 모두 인터넷에서 모아와가지고 분석.평가하고 또 해 보게 하는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말하는 법 자체를 배운 적이 없으니 초등학교 과정부터 자신의 의견을 요령있게 말하고 토론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아무튼 얼마전에도 CNN과 영어로 인터뷰했는데 이제 앞으로 좀 더나아진 모습 기대해 보세요^^ 하루아침에 나아지기야 하겠습니까?^^

2. 왜 서양사람들의 글은 문두에 주제문장이 들어가는 두괄식 문장이 7-80%에 달하는 걸까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글의 대부분은 사실 미괄식, 즉 문미에 주제문장이 들어가지요. 우리식 삼단논법도 세 번째인 마지막 문장에 ‘그러므로’가 들어가지요. 그 이유는 퇴고문화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각 문화권의 독자가 원하는 것이 달라서 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 퇴고과정의 유무료 인한 차이일수도

첫 번째로 퇴고과정의 차이를 원인이라고 우선 생각해 봅니다. 미국에서 배운 글쓰기 방법은 글을 쓸 생각과 줄거리를 정리해보는 브레인스토밍과정,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무작정 써내려가거나 풍선모양의 생각연결박스 즉, 마인드맵을 활용해서 적어나가는 과정, 초안을 작성하느 과정, 그리고 퇴고를 거치며 주제문장을 문두에 올리고, 그 주제문장을 지지하거나 예증하는 문장만을 남긴채 문단을 분리하는 과정, 마지막 오탈자를 검증해서 바로잡는 과정 등의 순서로 갑니다.

물론 통상 마인드맵 혹은 쓸거리를 주요어, 키워드 중심으로 적어보거나 머리속에서 생각하는 1과정과, 주요어, 키워드를 중심으로 본문에주로 쓸거리 3-4가지를 정해서 주제문장으로 표출하고, 이를 입증, 지지(경험담이나 연구결과 예시 등)하여 문단을 완성하여, 본문을 마무리한 후 서론, 결론을 작성하는 2과정과 오탈자를 검증하고 논리적 일관성을 확인하여 편집을 하는 3과정으로 압축될 수 있겠지요.

머리에 생각나는 순서대로 글을 쓰게되는 우리식 글쓰기는 결국 뇌의 사고과정의 흐름에 따라서 논거들을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에 그러니까 이런 결론에 이른다는 방식으로 글을 쓸수 밖에 없지요. 물론 문단의 구분은 작문시간에 배운 “한 문단은 한개의 아이디어”라는 것은 저를 포함해서 일상적으로 무시합니다. 그냥 한 문단에 문장 네다섯개 라거나 하는 식으로 적당히 몇 줄을 한 문단으로 하고 엔터로 문단을 바꿀 뿐이지요.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글쓴이의 생각흐름에 따라서 글을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지요. 이건 우리가 국어책을 읽거나 독서클럽에서 책읽기를 시키면 백이면 백 다른 곳에서 끊어읽기를 하는 것을 봐도 알 수가 았지요. 글자가 아닌 소리로만 우리말을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숨이 막힐때 임의대로 띄어 읽어버리게 되지요. 주어, 목적어, 술어의 한 단위를 들어야 우리 뇌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아무데서나 뛰어서 읽어버리면 글자 자료를 보지 않는 이상 이해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교수의 강의중 최악인 경우는 바로 교재의 순서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강의안을 그대로 읽어주는 교수지요. 학생들에게 강의안을 공개하지 않으니 학생들은 교재로 예습할 수 밖에 없는데, 교수가 아무데서나 뛰어 읽어버리니 도무지 뇌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최고로 성실한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100% 받아쓰기를 노트해서 시험전에 책읽듯이 공부하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강의는 이해에 아무런 도움도 못준 것이고, 학생들은 그냥 글자를 외워서 학점을 잘 받은 것 뿐이지요.

나. 독자가 기대하는 것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일수도

두 번째로, 글을 읽는 독자가 희망하는 문장서술방식이 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살펴봅니다. 서양사람들은 논증하거나 토론하는 것에 강하므로 자신이 강한 논거보다는 약점인 주제문장을 먼저 듣거나 읽고 싶어하기 때문에 약점인 주제문장을 문두에 두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평소에 토론을 즐겨하니 각가지 주제의 지지,반대의 논거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글쓴이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더 궁금하게 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반면, 동양사람들은 논증에 약하고, 주관적으로 인상평가를 하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해 평소에 생각해보디 않지요. 그렇지만 임기응변식, 혹은 즉흥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한 찬반을 하게 되고 그에 맞춰서 긍정과 부정의 결론을 먼저 내리지요. 그 다음에 그를 합리화하거나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논거, 증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요.

예를 들어 판결을 하는 경우에도 원고와 피고 둘중 누가 더 좋은 사람인가를 판단하고, 그 다음에 그사람이 이기기 위한 법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아니면 청소년 음란물 등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규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결론을 먼저 내린 다음에 논거나 규제방법의 합헌성 등은 경시하고 무조건 규제하기 위한 법리를 내리는 경우도 많구요.

따라서 동양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잘하는 결론 내리기보다는 자신들이 약한 배경지식이나 논거에 대해 먼저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문단의 가장 마지막에 결론이 들어가고, 앞 부분에는 배경지식이나 논거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가설도 가능하겠지요. 결국 선호되는 글읽기 방법에 맞춰서 주제문장을 글쓴이의 자연스런 사고흐름에 맞춰서 그대로 두느냐, 아니면 주제문장을 문두로 올리는 편집 혹은 퇴고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서 동양과 서양의 문단 글쓰기가 달라진 탓도 있겠지요.

3. 글쓰기의 종류가 다른데 어떻게 한 가지 방식으로 배울수가 있을까요?

우린 흔히 글쓰기를 배운다고 하면 한 가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대부분 문학적 글쓰기 혹은 수필쓰기와 같이 일기쓰기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일부 논술시험이 생기면서 각 사설 논술학원이 서구식 4-5문단 에세이 작성법의 일부만을 가져와 하나인 것인양 가르치고, 대학 채점교수들도 이를 따라서 채점하면서 생긴 이상한 원칙도 있긴 하구요.

그러나 글쓰기 방법은 창의적 글쓰기인 문학을 위한 것과 비판적 글쓰기인 설명문, 논설문 작성법,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의 기자체 등으로 그 방법이 각기 다르고, 학문분야에 따라서는 인문학 글쓰기 방법인 미국의 심리학회식 글쓰기(APA) 즉, 목차를 만들고 서론, 본론, 결론으로 쓰기가 있고, 문학 글쓰기 방법(MLI) 즉, 목차를 만드리기 보다는 통으로 글을 쓰는 방법이 있지요. 아마도 국문학과나 영문학과 논문과 일반 인문학부 논문을 비교해 보시면 글쓰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냥 유학다녀온 교수님들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관행으로 굳어져 학생입장에서는 이유도 모르고 답습해온 글쓰기 방식이지요. 다른 학과 논문을 볼 이유가 없으니 전부 다 한가지 방식으로 글을 쓰는가보다 생각하게 된 것이구요.

그리고 더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글쓰기 차이이지요. 문학 등 인문에 가까울수록 문장을 쓰는 방법이 감성에 호소하게 되므로 형용사, 부사가 많아지고, 중언부언 스토리텔링으로 문장이 길어지구요.

반면 자연과학은 우뇌형, 공학적성의 사람들이 흔히 난독증을 가지고 있어 긴 문장을 싫어하고, 글자보다 그림이 더 많은 만화를 좋아하는 탓에 형용사, 부사의 사용을 싫어하지요. 딱 쓸 것만 쓰고 중언부언을 싫어하지요. 예를 들어, 논술학원 강사중에서 ‘왜냐하면’이라고 쓰면 문장 끝에 ‘때문이다’를 쓰면 중언부언, 불필요한 요소이니 삭제하라고 가르친다면 100% 미국의 자연과학 논문쓰기를 따라한 것입니다. 학원 선생임에게 배운 것을 무슨 원칙처럼 생각하고 의심조차 안해보는 강남키드의 폐해가 심각하지요. 기성의 것을 의심없이,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자녀세대에게 전승하는 것 만큼 나쁜 거싱 없지요.

사교육이란 것이 경험론에 치우치고,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사람, 즉 그냥 학부모나 학생이 ‘우와 잘 가르치는 것 같다.’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발전하니 생긴 문제입니다. 교수법이나 학습법에 대한 과학적 검증없이 경험이나 홍보, 권위에 의해 갈라파고스적으로 고립되게 발전한 탓이지요. 게다가 대부분 일본에서 왜곡된 것을 한번 더 왜곡시키는 것이니 심각한 상황이지요.

대게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교육은 소설가나 기자가 하느 것이 많습니다. 창의적 글쓰기만 강조되는 탓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선 설명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논설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은 문학이나 언론기사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평생학습에 필요한 설명문, 논설문 쓰기와 이해하기 입니다.

특히 OECD회원국 중 문맹률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가 역설적이게도 문장의 이해도는 30%남짓밖에 안된다는 현실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아야하지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는데 언어를 배워야 하고, 자신의 뇌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글을 배워야 하는 심각한 상황인 샘이지요. 기초교육이 무너지고 오로기 시험용 암기학습법만 남아있고, 1등을 베껴 살아남는 2등되기 문화만이 넘치기 때문이지요.

4. 동서양이 다른 것은 문화가 아니라 교육이 아닐까요?

상대방을 배려해서 대화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하고, 정말 동의하지 않는 이상 고개를 끄떡이지 말며, 어른이게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해야 한다는 서구문화가 있습니다. 반면, 오로지 사회에서 정해진 서열에 따라 주어진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오로지 자기의 관심사를 얘기하고, 듣는이는 무조건 고개를 끄떡여야 하며,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안되고, 어디를 보고, 가끔씩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처세술인 동양의 문화의 차이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양식은 토론이 가능하지가 않지요?

상대방이 구사하는 언어를 보면 그 출신지역이 어딘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발음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홍콩이나 중국출신들은 영어문장에 진행형이 유독 많습니다. 그들이 영어를 가르칠 때 진행형 ing를 이상하게 가르친 탓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하는 발음이 있다고 합니다. 못하는게 아니라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아주 우연히 잘못 가르친 내용이 이유도 모른체 반복되어 전승되면서, 경험론으로 굳어진 교육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가 다르다라고 하면 차별적인 접근을 해서, 우리 것이 틀렸다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반감이 먼저 생깁니다. 그래서 문화교류가 어려운 것입니다. 무조건 상대것이 좋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무조건 문화침략이라고 거부하는 것이나 모두 교육과 문화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잘못된 교육은 바꿔야 하는 것이지, 일본에서 배운 문학 학습법과 문법, 교수법을 마치 우리의 문화인양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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