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없인 혁신, 창의가 없다. 긍정만으론 불평등, 차별의식 해소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아요. 우리가 말하는 인정, 단골손님 등은 결국 이방인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는 것일뿐이죠. 지역감정이나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도 이 영향이구요.

사기죄 고소,고발율만 높은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인구당 고소/고발율이 미국, 일본보다 높지요. 문제는 고소, 고발은 하는 사람이 엄청 많이 하고, 한건도 안하는 사람이 많지요. 이게 지역유지라는 사람들이 파파라치 같은 식으로 하는거죠. 토착비리의 온상이구요. 군수가 연속해서 처벌받는 지역들이 대표적이구요. 선거때는 이런 사람들이 당책이라고 하는 역할을 하구요.

새마을운동때부터 호장, 동장들이 해왔던 일. 일나온 사람수를 속여서 돈받고, 지금도 각종 면세, 공저 기금을 공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오는 사람들이죠.

단골, 인정이 넘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면 이방인에 대한 차별,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차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요. 긍정적인 눈만 가지고는 파괴가 없고, 파괴없인 혁신이나 창의는 없지요.

나이로 차별하는 것도 그만큼 평등한 사회는 아니란 것이구요. 갑과 을이 없어지지 못하는 것은 권위주의가 강하기 때문이구요. 권위주의는 안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궤변이 없어져야지요. 모두가 평등한대 어떻게 권위란게 존재하겠어요.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의 신용평가가 엉터리이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신용평가기관을 못빋고 그러니 담보대출만 있구요. 신용평가를 못하니 제대로 된 투자은행은 될수가 없고, 투자로 수익을 얻을 길이 없으니 외국에 비해 엄청나게 큰 예대마진으로 미국 금융회사들보다 영업이익률이 높지요. 한마디로 신용평가 시스템 등 제도나 시스템의 혁신이나 개혁은 없고, 여전히 경험론과 감으로 비지니스를 하지요. 관료들은 고시공부때 암기한 엉터리 경제학원론과 과거공문 베끼기만 하니 항상 실패의 반복만 있지요.

국민들은 그걸 항상 대통령 탓하거나 정치만 탓하니 관료제도가 변하지 않고, 똑같은 실패를 경험하지요. 역사가 반복된다는 인식은 철저히 농경문화적이고, 경험론적인 접근이지요.

유목민들에게는 모든게 새로운 것이고 혁신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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